24일 방한한 피터 틸(Peter Thielㆍ47) 페이팔 창업자가 서울 연세대 백양콘서트홀에서 열린 강연을 가졌다. 800석이 넘는 강연장은 학생들로 가득찼다. 그는 미국 투자거물로 대표적인 자수성가 IT 부호다. 기업가로 데뷔한 지 20년도 안돼 자산 22억달러(2조4460억원)를 쌓을 수 있었다.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특이점(Singularity)’을 성공의 핵심 요소로 꼽았다. 그는 “성공적인 창업을 하려면 모두가 가는 시장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톨스토이 저작 ‘안나 카레니나’를 빌려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행복한 기업들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성공한다“며 “모두가 경쟁하는 시장을 피해 자기만의 통찰력으로 새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0에서 1’, 즉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힘은 각자의 특이점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특이점’은 그의 성공 열쇠이기도 하다. 그는 1998년 맥스 레브친(Max Levchin)과 함께 페이팔(PayPal)을 설립했다. 출범 4년만인 2002년 기업공개를 했으며 그해 말에는 15억달러(약 1조6800억원)에 이베이에 팔았다. 이후 클라리움 캐피탈(Clarium Capital)을 설립해 투자자로 변신했다. 그는 뛰어난 통찰력과 혁신적 투자로 재산을 늘릴 수 있었다. 스페이스엑스, 에어비엔비, 우버 등이 대표적인 투자처다. 그는 페이스북 최초 외부투자자로도 유명하다.
세계 최대 전자결제서비스를 만든 그는 다른 IT부호와 다르게 대학에서 컴퓨터를 공부하지 않았다. 그의 전공은 철학과 법이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그가 가진 차별점이었다. 페이팔은 그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지폐는 이전 시대의 기술이며, 미래에는 닳아 없어지지 않는 화폐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창업 당시 “전자결제서비스는 전망없는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출범 후 15년만에 페이팔은 미국 디지털 결제의 80%를 장악했으며, 세계 193개국에서 26종류 통화로 1800억달러(약200조원)를 움직였다.
피터 틸이 페이스북 투자 시에도 이미 포화상태인 SNS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페이스북이 사람들의 ‘진짜 자아(real identity)’에 대한 갈망을 채워줄 것으로 내다봤다. 소셜넷(SocialNet)등 기존 SNS는 사이버상에 가상의 자아를 만드는 아바타 서비스를 제공했다. 페이스북은 ‘현실세계’를 온라인에 끌었다. 글과 사진을 올려 친구와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인간적 욕망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2014년, 페이스북은 창립 10년만에 SNS 시장 점유율 55%를 달성했다.
피터 틸은 강연에서도 성공적인 창업을 위해선 이처럼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성장과정을 빌려 독창성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8학년(중학교 2년) 때 이미 사람들은 나의 미래를 예측했다”며 “고등학교 졸업 후 스탠포드에 진학해 대학원을 거쳐 유명 로펌에 들어갈 것이라 말했다“고 밝혔다. 실제 그는 스탠포드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같은 대학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직장에 계속 다니는 것이 안정적인 성공의 길이었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난 패러다임을 깨고 퇴사를 해, 결국 이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며 성공 과정을 설명했다.
피터 틸은 “‘도전해야 한다‘는 창업 공식이 오히려 도전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성공에 ’정답‘은 없으며 다만 각자만의 ‘해답’만이 있을 뿐이라는 메시지였다.
그는 또한 세계가 한가지 색으로 일반화되는 세계화 시대에는 더욱 독점적 기술발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21세기만큼 세계화와 기술발전이 100% 동시에 이뤄지는 시대는 없었다”며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면서 세계가 일률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는 혁신적인 새기술만이 발전의 길”이라고 설명했다.
참석한 학생들에게도 그는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듯, 모두가 창업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경쟁을 통해 입사를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 전에 자신에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sourirant@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