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대한민국 접대문화 처벌 변천사
뉴스종합| 2015-03-05 10:06
[헤럴드경제=최상현 기자]“60~70년대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엔 포항이나 울산 등 공장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지방 공무원이 서울로 발령받아 올라가면 ‘전별금’ 명목으로 ‘알아서’ 1억씩 주는 게 거의 관례였다”-대기업 前 임원

“기업의 불법적인 비자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뇌물을 주고 받은 공무원이 ‘떡값’으로 받았다고 주장하면 기소하기 어렵다”-검사 출신 한 변호사

뇌물 수수 행위를 잡아내는 법은 과거부터 존재했으나 당시에는 실제로 빠져 나갈 구멍이 더 많았다.


▶구멍 숭숭 법망..2000년대 이후 강화=60~70년대 개발독재시대에 최고급 요정에는 정치권실세와 고위 관료 재계 상류층의 은밀한 거래를 이뤄지는 접대가 있었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는 3저(저금리, 저유가, 저달러) 호황을 타고 검은 돈과 정경유착은 더 활개를 쳤다. 그 당시에도 뇌물을 받으면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있었다.

현행법상 공무원의 금품ㆍ향응 수수 행위는 뇌물죄와 알선수재죄로 처벌한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 금품 등을 수수하면 뇌물죄, 다른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된 일을 중간에 알선해 주는 대가로 수수하면 알선수재죄가 적용된다.

일반인은 업무와 연관된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돈을 받으면 배임수재죄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80년대까지 이런 법으로 처벌을 받은 공무원이나 민간인들은 많지 않았다. 뇌물 수수 행위가 발각되더라도 자체 징계나 변상하는 선에서 마무리 됐다. 감옥에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특히 개발 인ㆍ허가권을 쥐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전별금’이나 ‘떡값’ 명목으로 금품을 주는 것은 문제가 안 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용민 변호사는 “100만원 안팎의 접대나 식사대접, 골프 약속 등은 사회 상규에 반하지 않는 것으로 친목이나 사교에 가까운 접대로 인식됐다”며 “그런 만남은 고급 정보와 인맥을 형성하는 자리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대가성이 없더라도 범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포괄적 뇌물죄’가 지난 97년 4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처음으로 적용했으나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2009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이 법을 적용했으나 노 전 대통령 자살 이후 사실상 이 법을 적용한 사례는 없다.

뇌물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건 2000년대 DJ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법무법인 이인의 김경진 변호사는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잡으면서 검찰에 대한 통제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면서 뇌물에 대한 검찰의 사정이 강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은 돈‘을 받은 사람을 공무원으로 간주해 뇌물죄로 처벌하는 공무원 의제(擬制) 규정을 둔 특별법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공무원이 담당하는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민간인도 배임수재죄보다 형량이 높은 뇌물죄로 처벌했다.

업무 관련성과 대가성 입증이라는 장벽 때문에 뇌물죄를 적용하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떡값’ 명목의 금품이나 접대성 향응을 받은 공무원과 민간인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김용민 변호사는 “지금까지 뇌물 수수 행위자에 처벌의 초점이 맞춰졌다면 김영란법은 이전보다 수수행위의 불법성을 강조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수억원 전별금에서 폐지 논의까지=기업들의 접대비도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풍파를 거쳤다.

전별금 명목으로 수억원이 나갔던 70년대와 달리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말 한 마디에 접대비 규모는 대폭 줄어들었다. ‘합법적인 검은 돈’인 기밀비는 아예 없어졌다. 2003년에는 정부 차원에서 고급유흥업소와 골프장 등 기업의 경영활동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되는 업종에 대해 아예 접대비를 폐지하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2005년 참여정부는 접대비를 줄일 목적으로 ‘접대비 실명제’를 도입했다. 접대비로 건당 50만원 이상을 쓰면 쓴 날짜와 금액, 접대장소, 접대목적, 접대받는 사람의 이름과 소속 등을 기록해 5년간 보관토록 했다. 접대비 실명제’로 접대비는 다시 큰 폭으로 줄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09년 서민 경제 활성화와 기업 규제 완화 차원에서 이 제도를 폐지했다. 김영란법 통과로 기업들은 유흥음식점이나 골프장 등지에서 고액의 접대를 하는 일이 다시 어려워지게 됐다고 토로한다.

src@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