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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품도 씨말라”…전당포 ‘개점휴업’
뉴스종합| 2015-03-09 11:12
전국 1083개 영업…부진늪 울상…경기나쁘면 잘될것? 오히려 정반대
집안에 물건자체가 없어…불황 실감…일부는 주방용품등 생필품 받기도


지난해 12월 좌판에서 생선을 팔던 A(40ㆍ여) 씨는 난생 처음 전당포를 찾았다. 같이 장사를 하던 남편이 생선을 옮기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허리를 다쳤는데, 당장 병원비가 모자랐기 때문이다. 전당포에 맡긴 것은 자신의 스마트폰과 남편의 노트북. 그렇게 손에 쥔 35만원은 고스란히 병원비로 써버렸다. A 씨는 “귀금속을 팔았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진작에 처분해 갖고 있지도 않았다”며 “이제 전당포 맡길 물건도 집에 남아있지 않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 일”이라고 말했다.

9일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에 1083개의 전당포가 영업 중이다. 


전당포는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마지막에 찾는 ‘비상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것도 집에 내다팔 물건이 어느 정도 있을 때나 성립하는 말이다.

전당포 업자들은 “요즘 서민들은 전당포에 맡길 만한 물건도 갖고 있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며 “불황을 피부로 체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강북구에서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는 박모(45) 씨는 “경기가 나쁘면 전당포 장사가 잘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정반대”라고 잘라말했다.

전당포 장사도 사고파는 물건이 많아야 굴러가는 법인데, 집안에 물건 자체가 없다 보니 이런 거래가 싹 중단됐다는 것이다.

박 씨는 “서민들이 집 안에 전당포 맡길 물건도 하나 없이 빡빡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쥐어짜도 물 한방울 나오지 않는 마른 걸레처럼, 서민 경제가 한없이 쪼그라들었다는 걸 전당포에서 체감한다는 것이다.

강남구 신사동에서 30년 넘게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는 남궁모(76ㆍ여) 씨는 이달 전당포 문을 닫을 예정이다. 그는 “IMF 때도 요즘처럼 장사가 안 되지는 않았다”며 “지난달 찾아온 손님이 단 3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당포 업황을 보면 서민경제의 상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는데, 지금은 최악 중의 최악”이라며 “귀금속 같은 물건 자체가 씨가 마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서민들이 수중에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귀중품마저 이미 팔아버린 상태라고 업자들은 보고 있었다.

명품을 취급하는 전당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강남구 청담동에서 6년째 명품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는 조모(53ㆍ여) 씨는 “2∼3년 전 500~600만원에 거래되던 까르띠에 시계를 지금은 거의 150만원 다운된 가격으로 판매 중”이라며 “명품이 이 정도라면, 서민들 사정은 볼 것도 없이 힘들다는 뜻”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은 귀금속 대신 ‘생필품’을 받아주는 전당포가 그나마 장사가 되는 편이다.

강남의 한 기업형 전당포 관계자는 “주방용품, 화장품, TV, 냉장고 등 생활용품까지 받다 보니 전통적인 전당포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취급하는 물건이 물건인만큼, 거의 ‘생계형’이다. 원룸 관리비 5만원을 내지 못해 작은 TV를 맡긴 30대 남성, 아이들 유치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끼던 피아노를 맡긴 어머니, 4만여원 되는 토익비를 내기 위해 평소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판 취준생 등이 이 곳의 고객들이다.

기업들도 급하게 이곳을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 전당포 관계자는 “직원 월급을 주려고 공장기계나 자기가 가진 특허권을 팔러 오는 사장님도 있고, 냉동새우 재고까지 맡기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이지웅 기자/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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