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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이병헌 감독 "'스물'로 청춘들에 조언할 생각은 없다"
엔터테인먼트| 2015-03-27 08:14
국내 극장가에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 영화가 등장했다. 김우빈-이준호-강하늘이라는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있는 '핫'한 남자배우들을 앞세워 첫날 스코어는 평일임에도 불구 무려 15만 관객을 동원했다. 쾌조의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병헌 감독의 맛깔나는 대사들이 스며든 탄탄한 시나리오와 감각적인 연출이 있었다.



이병헌 감독의 첫 상업영화 연출작 '스물'은 '스무살'은 무한대의 가능성이 열리는 나이 스물을 맞이한 세 남자의 찬란하고 유치한 사랑과 우정을 그린 성장 영화다. 인기만 많은 꿈 없이 '숨 쉬는게 목표'인 치호(김우빈),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친구들이 대학 갈 때 재수를 택한 아르바이트생 동우(이준호), 공부만 잘하는 경재(강하늘)가 어른으로 향해가는 관문을 앞두고 방황하는 에피소드들을 재미있게 담았다.

이병헌 감독은 '과속 스캔들', '써니', '타짜-신의 손', '오늘의 연애' 각색에 참여했으며 '냄새는 난다', '힘내세요 병헌씨', '출출한 여자'를 연출했다. 충무로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이병헌 감독이기에 '스물'은 시나리오 작업이 완성 됐을 때부터 관계자들 사이에서 돌면서 기대작으로 관심을 모았다.

'스물'은 거창하게 청춘에 대해 조언하려 들지 않는다. 치호, 동우, 경재를 연기한 김우빈, 강하늘은 지금까지 작품에서 보여줬던 이미지들을 내려놓고 한 껏 망가졌다. '짐승돌' 2PM의 멤버 준호에게서도 무대 위에서 보여주던 카리스마는 없다. 20대 남자 절친들이 모였을 때만이 나올 수 있는 음담패설부터 연애담까지 찌질함과 귀여움을 넘나든다. 스토리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기보다 '스물'은 개개인의 캐릭터들이 빛나는 작품이다. 이병헌 감독은 이 이야기를 어디서 가져와 풀었을까.

"'스물' 치호, 동우, 경재 에피소드를 보고 공감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그런가요?'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어요. 일단 제 자신이 공감되면 상황을 쓰는 편이에요. 20대 초반 실제로 제가 겪은건 아니지만 친구들 무리 안에서 벌어진 에피소드였어요."

"친구들에게 영감을 받으면 사연이 같이 와요. 실제로 경재, 동우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도 있고요. 사실은 남자끼리 노는 정서들이 영화에서는 귀엽게 미화된 부분들이 있어요. 날 것 그대로 보다 영화적으로 꾸민 것을 보면 훨씬 재미있게 받아들일 것 같아요. 치부를 포장하는 걸 좋아하니깐요. 친구들을 많이 초대했는데 자지러지게 웃을 것 같아요."

"캐릭터에 맞는 상상을 합니다. 경재 같은 경우에는 진주 뿐만 아니라 치호처럼 직접적으로 여자한테 돌직구를 날릴 수 없는 성격이에요. 남자의 본심은 다들 그런 로망이 있어요. 은근히 하고 싶어하는 양아치 판타지랄까요? 하하."



이병헌 감독은 언론시사회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치호, 동우, 경재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버무렸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와중에서 이 감독은 치호의 모습이 제일 자신의 20대와 가깝다고 밝혔다.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제 20대를 생각하면 치호랑 제일 비슷해요. 초반에 저도 치호처럼 잉여로운 생활을 좀 했거든요."

음담패설이 난무하지만, 15세 관람 등급을 판정받은 만큼 이병헌 감독은 수위를 조절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조금 더 많은 대중과 편하게 소통하기 위해 수위를 조금 낮췄어요. 19세로 간다면 이렇게 안했어요. 자신있어요. 조금 더 되바라지게 쓰고 연출했을거에요."

각색과 독립영화를 연출해오던 이병헌 감독은 첫 상업영화를 연출하면서 그 동안에 느꼈던 것과는 다른 쾌감과 고충을 겪었다고.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 이 감독은 기자간담회 당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히 보이기도 했다.

"많은 부분들이 달라요. 안떨릴 줄 알았는데 초조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당황스러워요. 상업영화는 아니었지만 경험도 있고 그 때는 오히려 영화제를 통해 작품을 공개하고, 반응도 좋아서 편안하게 했거든요. 이번에는 남의 돈을 많이 써서 그런지 불편함이 있긴 있어요. 시사회 때도 앉아있는게 힘들었어요. 얼굴이 낯뜨거워지고 중압감이 절 누르더라고요. (상업영화가) 어쨌든 재미는 있는 것 같아요.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잖아요."



'스물'은 캐릭터들의 생활형 대사가 일품이다. 착착 붙는 대사는 배우들의 연기에 한 껏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했고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했다. 대사를 쓰는 그만의 정공법이 있는지 물었다.

"대사를 다 써놓고 계속 봤어요. 대사가 우리 영화 같은 장르는 대사가 다리 하나 부수는 것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고민을 안할 수가 없었어요. 내 느낌대로 써놓고도 계속 보고, 리듬이 깨지지 않는 부분을 고쳐보기도 하고요."

극 막바지 소소반점에서 치호, 동우, 경재가 발악(?)하는 신은 이병헌 감독이 꽤나 힘을 줘 연출했다. 여러모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신으로 그 어느 신보다 많은 신경을 써야했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촬영, 음악, 액션 등 어느 정도 정해놓고 갔어요. 재미만을 주기 위한 생각은 아니었어요. 소소반점은 상징적인 의미라고 생각해요. 스무살에 머무는 공간 안에서 겪어왔던 고민들이나 이런걸 거친 후 호기롭기 앞으로 나아가자 했지만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잖아요. 지금 머무는 이 공간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지만 물리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아이들이 몸부림을 치죠. 그런 감정을 생각하고 있던 거라서 조금 길게 갔어요. 음악같은 경우도 30~40대들에게 추억이 주고 싶었어요. 어떤 정서를 전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보니 옛날 노래를 쓰는게 좋겠다 싶었죠. 그래서 에어서플라이의 음악 골랐어요. 반전의 코미디란 느낌도 있지만 경재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슬픈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러가지로 제게 중요한 신이었어요."

'스물'은 말한다. 청춘이 빛나는 건, 시행착오를 겪어도 다시 돌아갈 시간이 충분히 빛나기 때문이라고. 청춘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마음인지 물었지만 그는 오히려 청춘이 아닌 자신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고 고백했다.

"그 메시지가 지금 스무살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대사라기보다는 제게 하는 말인 것 같아요. '스물'을 통해 그 나이 친구들에게 조언을 할 생각은 없어요. 당장은 공감하고 웃으면서 응원이 되는 정도의 대사를 염두하고 썼는데, 쓰고 보니 흔한 조언 가고 명언처럼 느껴질 수도 있더라고요.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현재의 나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병헌 감독은 자신이 생각한 캐릭터들에 숨을 불어넣어 탄생시킨 김우빈, 이준호, 강하늘에 대해서 큰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자신의 기대를 모두 채워진 김우빈을 거침없이 칭찬했다.

"처음부터 김우빈을 생각했기 때문에 기대가 높았어요. 그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치호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지점들이 표정, 말투를 연기하면 딱 나오겠다 이런 기대요. 김우빈은 그런 기대를 다 채워버려요. 망가지는 것에 있어서 두려워하지 않더라고요.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친구였어요. 처음에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자기를 아끼는가 싶었는데 적응하기 시작하니 엄청나게 놀더라고요. 어떤 배우들은 내지르는 연기를 할 때도 앵글을 채우지 못하는데 우빈이는 어떻게 카메라를 가져다놔도 앵글을 꽉 채워요. 카메라 안에서 잘 노는 친구죠."

"준호도 처음부터 생각했던 케스팅이었어요. 저는 준호를 '지구에서 제일 바쁘다'고 표현해요. 그만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라 걱정을 많이 했어요. 바쁜 스케줄 안에서 연기하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쳐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 친구는 현장에서 단 한 번도 쳐진 기운을 보여준 적이 없어요. 욕심을 채우기 위한 열정,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더라고요."

"연기에 여러가지 종류가 있잖아요. 감각으로 해결해야 하는 센스가 돋보이는 연기와 고민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연기, 캐릭터, 상황들이요. 강하늘은 감각으로 풀어야하는 연기도 노력으로 만들어버리는 연기에 대한 노력, 성실함을 지니고 있어요. 항상 잘 웃어서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편안함도 있고요."



스무살 때의 고민을 '스물'로 이야기했던 이병헌 감독.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그 고민이 해결됐을까.

"스무살 때 하던 고민들에 더 보태졌죠. 하하. 대사로도 있어요. 서른살, 마흔살 되면 스무살 때 했던 고민들은 그대로 놓여있고, 그 위에 더 얹혀지는 것 뿐이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대신 스무살 때 커보였을 여자, 사랑, 연애 이런 고민의 크기는 조금 줄어들긴 하겠죠. 어느 정도 감정을 감출 줄 도 알고 분배할 줄도 알게 되고요."

이병헌 감독은 '스물'을 다시 한 번 발판 삼아 앞으로도 많은 작품을 연출하고 싶은 욕심을 드러냈다. 스크린에서 이병헌 감독의 작품을 다시 보는 날을 기대해본다.

"다작 하고 싶어요. 멜로도 하고 싶고, 실제 벌어졌던 사건 사고에 대해 생각했던 부분을 찍고 싶기도 하고, 남자 이야기로 더 나아가 적나라하고 내면을 뒤집는 블랙코미디도 하고 싶고요."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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