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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어요. 이제 악밖에 안 남았어요”
뉴스종합| 2015-03-31 11:01

법 시행후 종사자 절반 가까이 줄어
변종업소·해외원정 성매매등 내몰려…정부 ‘풍선효과’아랑곳없이 성과만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요. 악밖에 안 남았습니다.”

지난 27일 저녁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미아리 텍사스 한켠에서 만난 김모(35ㆍ여)씨가 말했다. 그는 “2004년 9월 시행된 성매매특별법은 내 인생을 비틀어버린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강원도 삼척 출신인 김씨는 스무살 되던 2000년, 혼자 버스 타고 서울에 왔다. 고교 중퇴 학력으로 변변한 직장을 잡지 못하다 미아리에 첫 발을 디뎠다. 가족도 없이 강아지에 애정을 몰아준 김씨의 꿈은 바짝 돈을 모아 ‘애견 미용샵’을 차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2001년부터 일하지 않는 낮에 학원을 다녔다. 이듬해 애견 미용 자격증을 땄다. 김씨는 “직업은 자랑스럽지 않았지만 꿈이 성큼 다가오는 듯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밀어닥쳤다. ‘아가씨도 경찰서에 끌려가고 벌금 낸다’는 법이라고 했다.

겁을 집어먹은 아가씨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애견샵이 손에 잡힐 듯했고 다른 기술과 경험, 학력이 모자란 김씨는 결국 강남구 논현동의 주점과 송파구 잠실의 보도방을 택하게 됐다.

하지만 술 한잔 못하는 김씨의 몸은 매일 술 먹어야 하는 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3개월간 병원비가 100만원이 넘었고, 약이 늘수록 내성도 생겼다. “먹던 위장약이 말을 안 들으면 다른 회사 약으로 바꿔가며 버텼다”고 그는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돈을 모으려는 김씨의 계획이 구조적으로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강남 원룸 월세만 120∼150만원. 꾸미기에 들어가는 돈도 컸다.

렌트한 옷이 훼손되면 값을 죄다 물었고 ‘경쟁자’에 뒤쳐지지 않게 성형도 했다.

김씨는 “성형, 옷, 화장 따위는 허영심이 아니라 손님한테 선택받아 돈 벌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반년도 못 버티고 스물네살 된 김씨는 2005년 5월, 미아리로 돌아왔다. 잡혀갈지 모르지만 적어도 돈을 모으기에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서른다섯이 된 그는 “여전히 애견 미용샵을 차리는 게 목표지만 손님도 없고 돈도 없다. 모든 게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특별법 이후 고단해진 것은 김씨만이 아니다.

미아리 텍사스에 있던 A(32ㆍ여)씨도 법 시행 후 잡혀갈까 무서운 마음에 일을 그만두었다. 다른 직업도 찾아봤지만, 생계가 힘들었다. 결국 A씨는 호주 원정 성매매를 택했다. 계약을 깨면 큰 돈을 물어내야 한다는 협박에 악으로 버텼지만, 끝내 계약기간을 못 채우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귀국했다.

A씨는 “이젠 그 빚을 갚기 위해 다시 성매매를 한다”고 말했다.

집결지(집창촌) 여성들의 말에 따르면 브로커들은 여성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현지에서 감시인력을 붙였다. 말을 듣지 않으면 여권과 돈을 빼앗았다.

“외국에 간 아가씨들은 가끔 성인 동영상을 찍고 돌아왔다. 그만큼 빚, 계약금 문제가 절박했다는 것이다.” 전국 성매매 집결지 업주들의 모임인 한터전국연합회 강현준(61) 사무국장이 말했다. 그는 “‘나이 든’ 아가씨들은 법 이후 갈 곳이 없어 ‘떡다방’처럼 더는 추락할 수 없는 곳으로 자의반 타의반 내몰렸다”고 말했다.

특별법 이후 집결지 여성들의 삶은 조사되고 호소돼야 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취급되고 있다.

특별법 시행 전인 2002년 전국 집결지 종사자는 9092명이었다. 2013년 그 수는 5103명으로 절반 가량 줄었다.

여가부가 3년마다 발표하는 ‘성매매 실태조사’는 성매매 인식이 향상됐고 성매매 종사자가 줄었다는 ‘성과’를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성과로 사라진 4000여명의 실태는 찾아볼 수 없다. 여가부 관계자는 “우리도 알 방법이 없다”고 했다.

지난 30일 정부는 성매매 집결지 폐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전국에 있는 집결지를 완전 제거하는 작업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뚜렷한 ‘풍선효과’에도 불구하고 집결지 폐쇄를 거듭 천명한 것이다.

이름 없는 집결지 여성들이 또 다시 음지(陰地)로 달음질치고 있다.

이지웅ㆍ양영경 기자/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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