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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나를 돌아봅니다. 처처에 부끄러움 뿐…”
뉴스종합| 2015-04-16 11:08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분향소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274명의 영정사진이 추모객들을 맞고 있다. 실종자 9명의 액자엔 사진이 아닌 가족들의 메시지가 쓰여있다. “현철아, 엄마아빠는 숨쉬는 것도 미안해”, “엄마를 찾아야 아들 가슴에 여한이 없죠”…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전주말 팽목항에서 만난 가족들의 시간은 1년째 그대로 멈춰있었다. 한때 희생자 가족, 자원봉사자, 공무원, 기자 등으로 발 디딜 틈 없던 진도 실내체육관은 이제 평범한 체육관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당시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팽목항에는 지속적으로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유가족들은 한 목소리로 “해결된 게 없다”고 말한다.

제주도로 귀농하던 동생 권재근씨와 조카 혁규군을 잃은 권오복(60)씨는 1주기 의미부여 자체를 꺼렸다. 권씨는 “빨리 인양 결정을 내려야한다. 인양하지 않고서 유족들에게 1주기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팽목항 분향소를 지키던 단원고 2학년 3반 故김소연 양 아버지 김진철씨도 “아무런 사태 해결 없이 1년이 흘렀는데 1주기가 무슨 의미가 있냐”며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돈이 부족해서 돈 더 받으려고 데모하는 줄 안다. 기가 막힌다”고 눈물을 흘렸다.

아내와 이혼한 뒤 혈혈단신 키워온 딸의 1년전 음성을 김씨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했다.

김씨는 “옆에 선생님 없다고 했으면 밖으로 나오라고 했을 텐데. 내가 판단미스해서 딸이 죽은 것 같아 엄청 괴로웠다”며 울먹였다. “차라리 선생님이 없었으면 구명조끼 입고 밖으로 뛰어 나오라고 했을 건데…”

지난 1년간 스트레스로 김씨의 앞니가 두개가 빠지고 나머지도 계속 흔들린다고 한다.

단원고 2학년 9반 故진윤희 양의 삼촌 김성훈(40)씨 가족 총무다. 김씨는 “가족들이 원하는 건 선체 인양과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밝히는 것”이라며 “그냥 기념식일 뿐이라면 차라리 4월 16일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를 받는 ‘팽목지기’ 역할도 하고 있다. 전국에서 온 따뜻하고 정성스런 손편지를 받아 가족들에 전달하고 SNS에 올려 이를 공유하는 것. 편지의 ‘수신인’은 희생자뿐 아니라 유가족, 실종자, 팽목항을 비롯 그곳에 직접 갈 수 없는 자기 자신 등 누구라도 될 수 있다.

1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14일에도 팽목항으로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다음은 편지 내용.

받는사람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윤희 삼촌 앞. 우편번호 539-842

“아이들에게가 아닌, 지는 꽃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치고 싶은 4월. 개나리 꽃같은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 생에서 가장 슬프고도 서러운 4월을 맞습니다. ‘잊지 말자’는 다짐과 각오는 어디론가 자꾸 달아나고 문득 침묵하고 있는 나를 돌아봅니다. 처처에 부끄러움 뿐입니다…” 2015. 4. 속초에서 김○○

진도=배두헌ㆍ이세진ㆍ양영경 기자/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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