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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X파일]외촉법 내주고 관철한 ‘상설특검’…이제와서 “실효성 없다”는 野
뉴스종합| 2015-04-18 08:51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2014년 1월1일. 여야 국회의원들은 새해 첫 아침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함께 맞았습니다.

외국인투자촉진법 통과를 놓고 기싸움을 벌이던 여야는 밤샘 본회의 끝에 이날 오전 10시께 결국 외촉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재벌을 위한 특혜법’이라며 맞서던 야당이 결국 외촉법을 내준 배경에는 권력층 비리 수사를 위한 ‘상설특검법안’이 있었습니다.

여야 합의가 있어야만 이뤄지던 특검을 제도적으로 상설화해 일정 요건을 갖추면 실시할수 있도록 하는 법안으로, 야당은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제를 2월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한다는 여당의 약속을 받고 외촉법에 대한 ‘빗장’을 풀었습니다.

▶2014년 2월28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무슨 일이= 2014년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 국회 법사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상설특검법안을 상정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전체회의였습니다. 여야는 2월 국회 내내 상설특검법안을 두고 갈등을 보였습니다. 법안심사소위가 파행되고 야당 의원들이 법사위 보이콧을 선언하는 사태까지 이어졌습니다. 상설특검법 처리에는 공감하면서도 각론에서 의견 차가 컸기 때문입니다.

야당은 ‘기구 특검’, 여당은 ‘제도 특검’을 요구했습니다. 특검 발동 요건을 여당은 재적 의원 2분의1, 야당은 3분의 1을 원했고, 특검 발동 시 법무부 장관의 승인 여부를 놓고도 의견이 갈렸습니다.

원내지도부까지 투입돼 서로 설득하고 양보한 끝에 단일안이 마련됐습니다.

▷특검의 수사대상과 수사범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재적 과반수 출석, 출석 과반수 찬성이 있거나 ▷법무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 특검을 실시하도록 했습니다. 형태는 ‘기구특검’ 대신 한 단계 낮은 ‘제도특검’으로 결정했고, 특검후보추천위는 법무부 차관ㆍ법원행정처 차장ㆍ대한변협 회장과 국회가 추천하는 인사 4인 등 모두 7인으로 구성해, 추천위가 2인의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중 한명을 특검으로 임명토록 했습니다.

여야가 한발씩 양보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했습니다.

후보자 추천위원회 구성과 임명 절차가 핵심이었습니다. 법무부 차관ㆍ법원행정처 차장ㆍ대한변협 회장 등은 정부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국회가 최종적으로 2명을 추천해 대통령이 이중 한명을 결정하는데 당연히 여당이 추천한 인사가 선택될 공산이 크다는 논리였습니다.

당시 회의록을 살펴보면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야가 합의해서 추천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야가 1명씩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은 여당이 추천한 사람을 임명할 것”이라며 “오히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입맛에 맞는 특검이 임명될 수 밖에 없다. 기존의 열한번에 걸친 개별 특검보다 더 개악된 내용”이라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문제제기는 임시국회 시한이 불과 몇시간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과, 2004년부터 시도된 검찰 개혁 법안 처리가 눈 앞에 다가왔다는 기대감에 가려졌습니다.

“상설특검법 통과 자체에 목매달고 통과 자체에 집착하다 보니 누더기 상설특검법이 돼 버렸다. 이 법안으로 권력층 비리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를 할 수 있겠나(정의당 서기호)”라는 자성의 목소리는 뒤로 묻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설특검법은 법사위 통과 당일 본회의에서 의결돼 3개월 뒤인 작년 6월19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상설특검법, ‘성완종 리스트’ 野 발목잡나= 상설특검법의 태동을 길게 설명한 이유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때문입니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생전에 남긴 메모에 거론된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국회 안팎에서는 특검론이 솔솔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특검론의 주체가 야당이 아닌 청와대와 여당이라는 점입니다. 특검의 배경은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인데, 오히려 정부 여당이 특검을 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야당은 ‘선 검찰 수사-후 특검’이라는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원인은 상설특검법의 태동 과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현행 상설특검법은 정부 여당의 의중이 대거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 특검을 주장하면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검을 해야하고, 이 경우 새누리당이 추천한 인사를 대통령이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보니 야당이 특검을 주장하기가 애매해진 것입니다. 여당에 외촉법을 내주고, 국회 파행을 거듭하면서까지 얻어낸 상설특검을 쓸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래서 야당은 ‘특검을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상설특검이 아닌 특별법에 의한 특검을 해야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상설특검은 내부구조로 보면 (후보자 추천위) 7명 중 야당 몫은 2명에 불과하다”며 “권력의 핵심에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상설특검법에 의한 평상시 특검보다 특별법에 의한 특검을 해야한다는 논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새정치연합 친박게이트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병헌 최고위원도 17일 회의에서 “제대로 된 법률에 의한 제대로 된 특검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를 위해 도입한 상설특검이 권력의 핵심층을 수사하기 역부족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한 야당 의원은 “(상설특검법안) 통과는 현실론을 택했던 것”이라며 “문제점을 알고 있었지만 일단 법제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스텝이 꼬여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질 위기에 처한 새정치연합, 과연 이 꼬임을 잘 풀어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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