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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무기수 홍승만, ‘오아시스’를 꿈꿨나
뉴스종합| 2015-05-01 10:11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이창동 감독의 2002년 작품 ‘오아시스’는 우리사회의 소외계층이라 할 수 있는 전과자 남성과 장애인 여성 사이의 사랑을 다룬 영화입니다.

중증뇌성마비자인 문소리가 뺑소니 사고로 형을 살다 나온 설경구에게 안치환의 노래 ‘내가 만일’을 상상 속에서 불러준 장면은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였죠.
설경구, 문소리 주연의 영화 ‘오아시스’의 한 장면.이창동 감독의 2002년 작품 ‘오아시스’는 우리사회의 소외계층이라 할 수 있는 전과자 남성과 장애인 여성 사이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최근 9일간의 잠적으로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무기수 홍승만(47)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영화 ‘오아시스’를 연상케 합니다.

홍씨의 교도소 생활은 스물 한살 때부터 시작됩니다. 강도 살인 미수로 7년간 복역한 뒤 다시 출소 4개월만에 애인을 죽여 불태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20대에 저지른 두번의 중죄로 그의 인생은 미처 꽃을 피우기도 전에 교도소 담장 안에 갇히게 됐죠.

하지만 홍씨는 삶을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996년부터 올해까지 교도소에 있는 동안 바른 수감 태도를 보이면서 모범수로 선정됩니다.

이 기간 동안 여러 자격증과 학사 학위까지 취득하는 등 학업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금으로부터 7년 전.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는 이성을 만나게 됩니다. 펜팔로 만나게 된 한 장애인 여성이었는데, 그녀와의 편지는 어두운 수감 생활의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을수록 교도소 바깥 땅을 한번 밟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는데, 마침 19년간의 모범수 생활을 인정받아 4박5일간의 꿈의 휴가를 받게 됩니다.

홍씨는 경기도 하남에 있는 고향집을 들른 후 안양에 있는 그녀를 만나러 가게 됩니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교관 허락 하에 전화 통화는 몇번 한적 있지만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죠.

또 수감 중 결혼을 하면 가석방 가능성이 높아지고, 내년이면 20년을 채워 감형 조건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그의 꿈은 더욱 부풀어 있었습니다.

홍씨는 여성을 만나 청혼을 했고, 혼인신고도 하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결혼은 물론 혼인신고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홍씨의 꿈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되는 순간이었죠.

절망감에 휩싸인 홍씨는 이때부터 극단적인 마음을 품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복귀일날 그는 교도소가 있는 전주 대신 무작정 기차를 타고 강원도로 떠났습니다.

이틀간 이곳에 머물다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합니다. 부산에서도 하루를 묵은 뒤 울산을 거쳤다가 조용한 곳을 찾아 경남 양산의 한 절에 이르게 됩니다.

홍씨는 우연히 이곳에서 한 할머니를 만납니다. 이 할머니가 창녕의 한 사찰에 산다는 사실을 알고선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딱한 사정이 있겠거니 하면서 홍씨를 창녕 사찰로 데려옵니다.

홍씨는 고마운 마음에 직접 밥과 설거지를 하고 사례 의사를 밝히기도 합니다.

그러던 지난달 27일 아침 사찰 주변 야산을 둘러보던 그는 할머니에게 등산을 다녀오겠다며 종적을 감추게 됩니다.

이틀 뒤 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시신이 발견됐는데 그 앞에는 유서 한장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청혼했던 그녀에게 ‘더 살면 뭐하겠느냐. 먼저 가겠다’고 했습니다. 또 ‘세상과 사랑에 아등바등 구걸하지 말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말도 적혀 있었습니다.

이렇게 홍씨가 꿈꿨던 ‘오아시스’는 안타까운 비극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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