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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김인권 "'약장수' 내 삶을 담아 연기했다"
엔터테인먼트| 2015-05-04 07:14
감초 역할로 어느 영화에 나오든지 시선을 가져가는 신 스틸러 김인권. 그런 그가 이번에는 '약장수'로 돌아왔다. 다수의 작품에서 코믹연기를 선보여왔던 김인권-박철민이 주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웃기는 영화라고 기대했을 관객들에겐 미안하지만, 이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약장수'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홍보관 '떴다방'에 취직해 아들을 연기하는 일범의 눈물겨운 생존기를 그린 작품으로 김인권, 박철민 주연의 휴먼 드라마다. 영화를 이끌어가야 하는 김인권은 아픈 딸을 돌봐야 하지만,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가족을 돌봐하는 가장 일범을 연기했다.

"어깨가 무겁네요. 주인공이 있을 때는 보조 맞춰서 따라가면 되서 즐기면서 해왔거든요.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다 받는 상태라 짊어지고 갈 때 무거운 느낌이 확실히 있습니다."

조치언 감독은 당초 김인권을 캐스팅으로 추천 받았을 때 선입견이 있어 걱정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수의 작품에서 코믹스럽고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여왔던 그였기에, 조치언 감독은 그에 대한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인권과 만나 대화를 나눠본 후 생각이 바꼈다. 김인권은 일범의 삶을 통째로 소화했다. 그는 일범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저 말고 다른 배우를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감독님 생각에는 제가 가볍고 코믹한 연기를 주로 해와서 선입견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실제로 제 가족 이야기도 하고, 감독님도 이 시나리오 쓰면서 엄마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는데 아버지 입장에서의 그 정서는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딸이 셋이나 있으니 그런 점이 연기하다보면 잘 나올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약장수'는 엔딩장면이 압권이다. 홍보관에서 일하면서 쉽지 않은 고난을 겪은 일범은 다시는 홍보관에 발을 들일 것 같지 않지만, 결국에는 돌아온다. 그가 우스꽝스러운 광대 분장을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은 웃음이라는 가면 속에 울고 있는 일범, 아니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웃는지 우는지 분간이 안가는 그의 얼굴이 스크린을 꽉 채우면, 숨을 절로 죽여지며, 먹먹해진다.

"분장을 제가 직접 했어요. 분장팀에서 하얗게 칠해주는데 예쁘게 그려지면 안될 것 같더라고요. 제가 분장을 일부러 뭉개면서 해봤는데 그 때부터 울컥하더라고요. 분 바르는 직업인데도,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모습으로 변할 때 영혼을 잃는 느낌이 들었어요. 순수한 저를 지탱해왔던 축이 꺾이는 것 같더라고요. 여기에 한복을 입고 춤 출 생각을 하니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지고요. 초반에 그 감정이 잘 나왔어요. 원하는 그림을 찾아내려고 하루종일 찍었는데 결국에는 초반 촬영 분이 쓰였어요."



홍보관이 미디어에서는 노인들의 주머니를 터는 악덕 업자라고 고발하고 있지만 '약장수'는 그 안에서도 홍보관의 순기능을 그려냈다. 물론 잘못된 형태지만, 자식들을 다 키운 후 홀로 적적하게 사는 노인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건네며 거짓이든 진실이든 노인들을 웃게 만든다는 점이다.

"조치언 감독님이 의심이 갈 정도로 이 업계를 잘 아세요.(웃음) '약장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 조사를 많이 하셨더라고요. 홍보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엄마들의 반응 같은 걸 조 감독님을 통해 많이 들었어요. 촬영 공간도 실제 홍보관이었고요. 촬영 첫날 인산인해였어요. 그 공간이 진실인지, 거짓인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을 갖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연기할 때 까르르 웃고 좋아하시는데 아기들 같더라고요. 조치언 감독님은 어머님들을 아기로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모든 아들이 그런 재주가 있으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

'약장수'는 지난달 23일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함께 개봉했다. 워낙 기대를 받고 있는 초대형 할리우드 작품인데다, 배우들까지 내한해 온통 관심은 그 작품에 쏠렸다. 많은 스크린 수를 확보한 탓에 '약장수'는 당연히 열세를 띨 수 밖에 없다.

"업계에서 저희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날짜가 크게 중요하다고 보진 않아요. 개봉 날짜가 중요한게 아니라 보게끔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앞서 잠깐 언급한 듯 김인권은 많은 상업 영화에서 감초 역할을 해오며 존재감을 발휘해왔다. 하지만 그는 사실 그다지 유머러스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오히려 '약장수'의 일범이 실제의 모습과 더 가깝다고 했다. 조연을 맡은 작품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하지만 주연을 맡은 작품에서는 '약장수'와 같은 무거운 주제들이 대부분이다.

"제가 일범이랑 많이 닮아있긴해요. 실제로 까불고 그런 스타일은 아닙니다. 웃음 포인트 제대로 짚고, 캐릭터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서 코믹한 모습을 논리적으로 만들어낸거죠. 캐릭터와 배우가 하나가 되는 삶을 연기하는건 쉽지만 같이 아파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건 즐거워요. '약장수', '신이 보낸 사람', '전국 노래자랑'도 그렇고 같이 힘들고 같이 아파하며 연기한 것 같아요."

"젊은 나이에 딸 셋이나 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배우로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눈물 겨운 생존기가 보이나봐요. 하하. 그런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와요. 즐거운 영화에서 포지션은 웃기는 감초 역할로 가고, 주연으로 갈 때는 진중한 주제의 영화들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크고 작은 역할이든 끊이지 않는 러브콜을 받고 있는 김인권. 충무로에서 바쁜 배우 중 하나다. 그에게 다른 배우들과 어떻게 차별점을 두고 있는지 물었다.

"다른 배우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닥을 지향하는 점 같습니다. 위로 올라가려는 것을 지향한다기보다는 바닥의 삶, 소시민, 약자 이런걸 지향해요. 초창기에는 재벌, 의사도 했었는데 지금은 갈 수록 더 찌질해지고 있죠.하하."

김인권은 영화가 즐거운 기능을 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약장수'처럼 한 번 쯤 생각해봐야할 진중한 소재들이 깔려 있는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전했다. 본인의 삶을 담아서 연기했다는 '약장수'로 김인권이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저의 삶을 담아서 연기했어요. 제 인생에서 소중한 작품이고 관객들에게 보여드렸을 때 많은 메시지나 의미를 줄 수 있는 좋은 영화가 탄생한 것 같아요. 두 시간 동안 즐겁게 웃기는 영화는 아니지만, 문화적으로 한 번은 꼭 봐야 할 작품인 것 같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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