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경제사건이 정관계 로비 리스트 사건으로 번졌다는 점에서 1997년 한보사건과 유사하다. 하지만 수사기류는 18년전과 확연히 다르다. 한보사건때 검찰은 대검 중수부 산하 수사 1,2,3과를 총동원하고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지검 검사들을 차출, 주요 비리를 영역별로 배당해 출국금지와 압수수색, 참고인조사를 동시다발로 진행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홍준표 경남지사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다른 리스트 인사의 주변인물에 대한 출국금지나 압수수색 소식은 거의 없다. 대선자금수사, 자원외교 관여 기업과 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진척도 감지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검찰이 비박(非朴)인 홍 지사를 집중 겨냥하고 박근혜 정부 전현직 비서실장 등 친박(親朴)에는 관대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일단 수사진용의 숫적 열세를 부인하기 어렵다. 한보때엔 검사와 수사관등 100여명이 관여했지만, 이번에는 3분의1 수준이다.
검찰은 상대적으로 입증하기 쉬운 부분부터 먼저 수사하는 것이지 인위적인 속도조절이나 수사 온도차는 없다는 입장이다. 단서의 선도(鮮度)와 가치가 수사 속도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실제, 홍지사의 경우 일찌감치 윤승모 전 부사장이 세부정황에 대해 일관성 있게 진술해 퍼즐 맞추기가 속도를 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수사에 착수해 고속도로 하이패스 기록까지 들여다보며 심혈을 기울였던 이완구 전 총리의 3000만원 수수건은 관련자 진술이 엇갈리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나머지 6인에 대해서는 홍 지사 만큼 중요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해 뼈대만 세웠을뿐, 집을 짓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8인 중 6인의 핵심 주변인물 등에 대한 출국금지 조차 하지 않는 것은 홍지사 수사태도와 사뭇 다르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최근 검찰 한 고위관계자가 ”외부에서 흔들지 마라“고 말한 것은 주목된다. 사안의 크기에 비해 수사진이 너무 적은 상황에서 외부의 흔들기까지 있다면 검찰로서는 전열을 재정비하지 않을 수 없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