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전문가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한국엔 더 치명적“…”일자리ㆍ주거ㆍ노후 불안 해결해야”
뉴스종합| 2015-05-07 10:14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늘어나는 소득에도 불구하고 소비하지 않고 저축에 열을 올리는 국민’은일본의 1990~2010년대 장기침체,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스케치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진단은 서로 달랐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을해소하지 않는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기업과 금융기관이 부채조정을 최우선시했다. 버블 시기 부동산의 시가 이상의 대출을 허용했기 때문에 부채비율 줄이기에 혈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지출을 억제하면서 일본 경제는 금융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대차대조표’ 형 불황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 4.4%를 유지하던 경제성장률은 1990년대에는 1.1%로 낮아졌다. 


이 시기 일본 국민들의 저축률은 치솟았다. 갚아야 할 돈은 많았지만 자산 가격이 붕괴돼 미래에 쓸 돈이 없다는 생각에 소비를 줄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개인소득 중 소비나 저축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증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0년대 들어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1997년 아시아 지역 외환위기의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소비세를 인상하는 정책적 패착을 일으켰기 때문. 이 시기 일본 국민들은 가처분 소득까지 줄면서 더이상 저축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그러나 일본 경제를 위협한 요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1996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산과 소비를 할 인구가 줄어들자 성장률은 급격히 낮아졌고 노후에 자녀들의 부양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젊은층은 노후 대비를 위해 소비를 줄였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경제 역시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고 저출산과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2016~2017년 사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가계부채비율 역시 2010년에 GDP 대비 80%까지 치솟았다. 강 선임연구위원은 “가계부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일본 자산 버블 붕괴처럼 본격적인 불황을 이끄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며 “단순 금리 인하는 오히려 가계부채 문제를 부추길 수 있는 양날의 검이므로 실물 위주의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한국 경제가 일본형 장기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는데 동의했다.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시기가 한국보다 10~20년 앞선 만큼 한국에서도 인구학적 변화의 충격이 2010년대 중반에 밀어닥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연구위원은 “그나마 일본은 버블 시기에 자산축적이 잘 돼 있어 버틸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그마저도 없다”며 불황의 충격이 더 강할 것으로 내다봤다.

권규호ㆍ오지윤 한국개발원(KDI)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고령층은 기대수명은 늘어나지만 정년 등 근로가능시간은 늘어나지 않으면서 은퇴 시기가 다가올수록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미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로 허리가 휜 40대가 은퇴할 시기가 되면 불황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교육 및 채용 시스템은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을 줄이도록 정비해야 하고 가계 지출 역시 자녀 교육과 노후를 대비할 저축 간에 균형을 맞출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 연구위원은 “최근 일자리 불안, 노후불안, 주거불안 등 이른바 3대 불안 때문에 평균소비성향이 저하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비정규직 문제, 높은 집값과 전세난 등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베이비붐 세대 은퇴 후의 불황을 대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why37@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