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한ㆍ일, 외교전 이어 문화전쟁…엑스포ㆍ비엔날레 국가관 경쟁, 문화유산등재 정면 충돌
라이프| 2015-05-14 07:46
[헤럴드경제=이윤미ㆍ김아미ㆍ신수정 기자]‘머리 싸움’(외교전쟁)에서 ‘가슴 싸움’(문화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의 외교관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ㆍ일 양 국의 대립 관계가 문화 쪽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외교전 와중에 글로벌 이벤트 ‘엑스포(밀라노)’와 ‘비엔날레(베니스)’가 이달 초 이탈리아에서 동시개막하면서 문화 쪽 경쟁이 고개를 들었다.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지구촌 3대 이벤트로 불리는 엑스포에서는 각 나라가 국가관을 열고 홍보에 나선다. 이번 밀라노엑스포의 주제는 음식이다. 베니스비엔날레는 문화계의 빅이벤트다. 격년으로 건축전과 미술전이 번갈아 열린다. 올해는 미술전이다. 역시 각 국이 국가관을 열고 멋 대결을 펼친다. 한국과 일본 문화재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권고는 양 국 갈등에 기름을 붓고 있다.

엑스포와 비엔날레에서의 대립이 자존심을 건 선의의 작은 경쟁이라면, 문화유산 등재를 둘러싼 갈등은 감정이 섞인 큰 싸움이다.






















▶‘김치 vs. 스시’(맛 대결)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서 한ㆍ일간 음식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양국은 지난 1일 개막해 오는 10월 31일까지 열리는 밀라노엑스포에 나란히 참가했다. 전체 145개 참가국 가운데 일본관은 6번째, 한국관은 9번째로 큰 규모로 전시관을 꾸며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다.

한국관은 “요구르트의 100배에 달하는 유산균을 담고 있는 한국 발효 음식이 미래 먹거리의 대안”이라는 주제로 꾸며졌다. ‘발효’에 초점을 맞춰 전시관 내에 365개 장독을 설치한 다음 장독 뚜껑 위로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의 사진을 비춰준다. 또 거대한 장독 모형을 설치하고, 영상을 통해 발효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반면 일본관은 바다와 육지에서 나오는 재료들의 ‘조화로운 다양성’을 주제로 삼았다. 생선, 배추, 무와 같은 식재료와 함께 주먹밥, 라면 등 일본의 대표적 음식들을 모형으로 만들어 벽에 전시했다.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살아있는 모형들을 보고 외국인 관람객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무엇보다 정보 제공면에서 일본이 앞섰다. 일본관 내 ‘다양성 폭포’라고 이름 붙은 거대한 LED 기둥에서는 각종 음식 사진들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사진 하나를 손으로 잡아서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음식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일본 측은 관련 자료가 1000여개라고 소개했다.

반면 한국관에서는 1층 로비에 작은 삼각형 기둥을 세워서 삼계탕, 잡채 사진과 간단한 설명을 붙여놓은 것이 거의 전부였다. 정작 한국에 어떤 음식이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온 관람객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일본관의 경우 주먹밥 모형만 해도 매실장아찌 등 종류별로 32개였다.

한식은 된장처럼 깊은 맛을 지녔고, 일식은 맛과 함께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갖춘 음식이다. 양국은 전시관 내 레스토랑에서 직접 음식을 판매하며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진검승부를 벌인다.







































▶‘이성 vs. 감성’(멋 대결)
=그런가 하면 베니스에서는 한ㆍ일간 ‘미술’ 대결이 화제다. 지난 9일 개막한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11월 22일)에서 한국, 일본은 ‘보이지 않는 경쟁’을 치르고 있다.

먼저 국가관 전시에서 양국은 상반된 콘셉트의 전시를 선보였다.

한국은 ‘축지법과 비행술’을, 일본은 ‘손에 쥔 열쇠’를 각각 타이틀로 내걸었다. 문경원, 전준호 작가가 참여한 한국관 전시는 실제 뇌과학분야의 가설을 기반으로 미래 인간의 일상을 다룬 영상을 곡면형 LED 디스플레이를 포함, 7채널로 상영했다.

반면 일본 작가 치하루 시오타는 낡은 조각배와 붉은 실, 열쇠로 만든 대형 설치작품으로 일본관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미술 관계자들은 “한국관은 머리로 이해하는 전시, 일본관은 가슴으로 느끼는 전시”라고 평가했다.

개막 당일 흥행은 한국관이 앞섰다. 특히 세계적인 미술계 파워맨들이 잇달아 전시장을 찾았다. 장 드 르와지 팔레 드 도쿄 관장은 “최고의 국가관 (Top pavillion)”라며 엄지를 추켜 세웠다. 개막식 후 이어진 VIP 만찬에는 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 니콜라스 세로타 테이트모던 미술관 관장 등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일본관은 개막식 이후 일반 관람객들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와!” 하는 감탄사를 뱉어냈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감성적인 터치의 작품이 이끌어낸 반응이었다.

국제전(본전시)은 한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이어졌다. 본전시에 한국은 3명(김아영, 남화연, 임흥순)의 작가를 리스트에 올린 반면, 사전 리서치 트립을 진행하지 않은 일본은 요절한 ‘천재 화가’ 테츠야 이시다 1명의 작품만을 올렸다.

특히 본전시에 참여한 한국 작가 중 임흥순(46)이 35세 이하 젊은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은사자상’의 영예를 안게 되면서, 결정적인 ‘판정승’을 이끌어냈다. 


























▶‘고대 vs. 근대’(얼 대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놓고 한ㆍ일 간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이어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논란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세계문화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지난 4일 일본의 근대화 산업시설 유산 23곳을 한국의 백제역사유적지구와 함께 등록 권고하면서 일본은 환호일색이다. 일본의 근대화 산업시설 23곳 중 하시마 탄광 등 7곳은 조선인이 대규모 강제 징용된 시설이어서 공분을 사고 있다. 강제 징용과 군수물자의 생산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할 보편적 가치에 합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되는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 부여 나성 등을 합친 8곳으로 유적협의회는 한국, 중국, 일본의 고대 왕국들 사이의 상호교류를 통해 백제가 이룩한 건축기술 발전과 불교 확산을 보여준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일본의 산업시설 유산에는 아시아 최초의 근대혁명유산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들 산업유산을 1850년대 이후 1910년대까지로 한정함으로써 태평양전쟁 중 강제징용과 무관함을 내세우는 교묘한 논리를 펴고 있다.

일본은 규수와 야마구치 지역을 포함한 11개현의 메이지 시대 유산을 등재시키는 작업을 2006년부터 전문가 그룹을 결성, 본격화했다. 2009년 일본 정부가 ‘잠정 목록’에 이 시설들을 올린 사실을 우리 정부는 2012년에야 뒤늦게 파악하고 반대입장을 밝혔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등재는 오는 6월28일부터 7월8일 독일 본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회원국 표결에 따라 최종 결정된다. 그 동안 등재권고는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표결은 요식행위라는 얘기다. 아베 일본 총리는 등재 결정권을 가진 관계국에 친서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학계에서는 피해국들과의 연대를 통한 지정 반대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와 함께 맞불작전으로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오는 22일 도쿄에서 열리는 양자회의를 통해 산업시설 23곳 중 7곳에 대해 ‘강제 징용시설’ 표기를 제안할 예정이지만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뒷북대응에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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