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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간신' 김강우의 연산군이어야만 하는 이유
엔터테인먼트| 2015-05-20 08:33
배우 김강우가 막연히 한 번 쯤은 연기해보고 싶었던 연산군의 옷을 드디어 입었다. 그 동안 폭군,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트라우마로 점점 파멸해나가는 연산군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복습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김강우는 전에 없던 광기어린 연기로 연산군의 예술적인 면에 집중했다. 그렇다고 연산군을 미화하지도, 왜곡하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간신' 속 연산군은 김강우의 연기 내공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의 캐릭터 말하고 싶다.



'간신'은 연산군 11년, 1만 미녀를 바쳐 왕을 쥐락펴락하려 했던 희대의 간신들의 치열한 권력 다툼을 그린 작품이다.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460만 스코어를 기록한 민규동 감독의 신작이다. 김강우와 영화 '간신' 개봉을 앞두고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부끄럽네요. 부족한게 많이 보여요. 개봉이 얼마 안남아서 어떻게 봐주실까 걱정이 되네요. 여성 분들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궁금해요. 역사에 있었던 인물이지만, 여성들에게 불편할 수 있는 장면들이 있어서, 그런 부분은 촬영할 때도 생각했었는데 개봉이 다가오니 조금 걱정이 드네요."

"그래도 기존 사극과는 다른 면들이 많이 있어서, 그런 부분은 또 어떻게 봐주실지가 기대가 됩니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운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비참하게 죽어간 것을 안 이후로, 어머니 복위 문제를 두고, 그 일에 가담했던 신하들을 죽이는 갑자사화를 일으킨 인물. 이후 정사를 돌보지 않고 쾌락에만 빠져 중종반정으로 왕이라는 이름도 얻지 못한 '희대의 폭군'이다. 하지만 김강우는 조금 더 다른 시각에서 연산군에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연산군은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조선의 왕인만큼, 그러한 특성들만을 부각시킨다면 '김강우여야만' 하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김강우는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를 했더라면'이라고 농을 던질만큼, 많은 자료들을 보며 역사를 공부했다. 이후에는 연산군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 달라졌다.

"책을 많이 보고 자료들을 보면서 저도 오해했던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단순이 폭군인 줄 알았는데 시대를 잘못만난 아티스트 같은 느낌이 강하게 오더라고요. 지금 태어났다면, 왕이 아닌 예술가로서 살았다면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을 삶을 살지 않았을까, 30대 중반에 그렇게 죽지않아도 됐을텐데 말이죠. 왕이라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벗고 자유롭게 살지 못해 안쓰럽더라요."



실존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가장 큰 고민은 실제와 연기 사이에서 줄을 잘 타야 하는 것이리라. 김강우 역시 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다채로운 연산군을 보여주는데 정진했다.

"역사 속 인물이다보니 기본 자료들이 많아요. 기록돼 있었던 사실이 있으니 그걸 기반해 연기하는데 참고했습니다. 그 기반이 부담이 되기도 했어요. 나의 연기가 괜히 왜곡을 한다거나, 미화를 할 수 있잖아요. 절충을 해야 하는데 한 쪽으로 치우칠까봐 걱정이 됐습니다. 또 그 인물이 다뤄졌던 전작들이 많아서 생기는 부담감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런 생각 만을 가지고 있다면 연기를 할 수 없죠. 다 버리고 나와 연산군과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누듯이 하나 둘 풀어나가야 했어요. 생각을 해보니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은 없다'란 결론을 내렸어요. 제가 해석하고 표현하는게 정답이라는 무모한 자신감으로 시작했습니다."

민규동 감독은 다른 배우들에게는 세세한 디테일을 요구했지만 김강우한테만큼은 제약을 두지 않았단다. 캐릭터가 선을 긋는 동시에 한계가 올 수 있는 것도 이유이지만, 이미 '간신' 촬영 전에 김강우와 많은 대화를 나눴던 것이 서로에게 깊은 신뢰로 적용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번 작품에서는 제가 들었던 만큼 감독님께서 디렉션을 자세히 주진 않으셨어요. 개인적으로 촬영하기 전에 민규동 감독님과 한 두 달 정도 연애를 했어요. 문자 엄청 많이 주고 받았어요. 술도 안먹고 맨정신에 감독님과 24시간 카톡하면서 사진 보내고, 그림 주고 받고, 서로 상상의 나래를 교환했죠. '간신'의 연산군의 모습은 그 때의 상상이 다 기반이 됐어요. 누가보면 무서운 변태같을 수도 있지만 다 기록에 의해 기초해서 상상을 했습니다.(웃음)"

"현장에서는 일사천리로 촬영이 진행됐어요. 주도적으로 질러서 사건을 만드는, 표현이 중요한 캐릭터라 감독님께서 '믿으니 해봐라'라고 하신 것 같아요. 안되는 건 편집으로 가고요. 처음부터 선을 그으면 편하지 못한 상태가 되니 감독님께서 그렇게 해주신 것 같네요."

작품에 들어가기 전, 모든 감독들과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냐고 물었더니, 김강우는 "모두 그런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연산군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어한 아쉬움도 내비쳤다.

"이 작품이 유독 그랬네요. 연산군 캐릭터를 구축해놓지 않으면 '간신'이 무너질 수가 있어요. 제목은 '간신'이지만 연산군이 서야 간신이 서는 것이니까요. 감독님이 거기에 예민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연산군', '융'이라면 조금 더 연산군을 입체적으로 그렸을 것 같아요. 장녹수의 관계도 강약 조절을 하고요. 그렇지 못한 것은 좀 아쉽네요."



연산군의 예술적 광기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주로 나눴지만, 김강우가 연기한 연산군에게는 또 한가지 특징이 있었다. 미친 듯 날뛰지만 뒤돌아서면 모성애를 자극하는 연민도 함께 자아낸다는 것. 이것 역시 김강우의 계산된 연기 중 하나다.

무섭게 쾌락에 빠지고, 어느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해 공허해한다. 또 더 이상 스스로 제어하지 못해 자신을 두려워하고, 주위의 시선에 다시 한 번 절망한다. 그는 순간적으로 변모되는 연산군의 다양한 감정을 빠뜨리지 않고 충실하게 담아냈다. 붉은 반점을 그려넣은 이유도 이런 감정변화의 원인이 되는 태생적 결핍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이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기들 앞에 장난감을 던져줬을 때의 눈빛, 정말 좋아서 하는 것, 아이의 호기심 같은, 그게 표현이 되야 했어요.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려고 한건 단순히 좋아서가 아니라, 이 사람을 여자로 탐하는 것으로 그치는게 아니라, 다른 아름다움을 또 찾아가고, 파고드는 것을 관객들에게도 보여줘야했어요."

"연산군의 쾌락이 시간이 지날 수록 세지고, 어느 정도에서 만족이 안되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숭재는 또 그걸 이용하고요. 그러면서도 브레이크를 걸 수가 없는 상황이잖아요. 연산군은 죽고 싶어도 겁나서 죽지도 못해요. 연민을 넣고 싶고 이해를 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붉은 반점을 그려넣었어요. 어머니로 인해 미쳐가는게 아니라, 태생적으로 결핍이 많은 사람으로 설정한거죠. 결핍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기에는 시간이 없으니까 외적으로 이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간신' 개봉 이후, 김강우가 연기한 연산군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영화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왔고, 이제 본인의 손을 떠나 개봉 만을 기다리는 그에게는 그 부분이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일 듯 싶었다.

"분명 영화가 개봉을 하면 캐릭터가 보일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부담도 크고요. 1차원적으로 폭군만 보였다면 실패한거고, 거기에 더해서 '왜 그랬을까' 어렴풋이 연민이 간다면 절반의 성공인 것이겠죠. 언론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제 욕심과는 살짝 괴리감은 있어요. 어쨌든 제목이 '간신'이고,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달래고 영화가 어떻게 평가받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강우는 함께 호흡을 맞춘 신인배우 임지연, 이유영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연산군에 집중하기 위해 후배들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한게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사실 지연이와 유영이에게는 미안해요. 현장에서 동료, 선배 배우로서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했거든요. 제 판단에 그게 나을 것 같았어요. 이기적이지만 현장에서 거의 이야기를 안했어요. 그럴 에너지도 없었고요. 이야기하고 연기 들어가고, 이렇게 에너지를 쓰기에는 제가 체력이 부족했거든요."



이렇게 만들어낸 연산군을 떠나보내기 아쉽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다시 한 번 연산군을 연기한다면 어떨 것 같냐고 물으니 "더 잘할 수 있다"며 미소를 띄웠다.

"'간신'을 준비하던 그 순간만큼 고민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하면 더 나올 것 같아요. 연산군은 파도파도 나오거든요. 하하."

인터뷰를 마칠 쯤, 말 그대로 김강우는 '간신' 속 연산군에게 모든 걸 다 쏟아부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다른 작품에서 연산군을 연기할 이름 모를 배우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어지간해서는 김강우를 뛰어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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