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경제광장-신율]과거청산과 과거극복
뉴스종합| 2015-05-21 11:00
35년 전 5ㆍ18부터 군부독재가 끝날 때까지 광주는 지명이 아니었다. 광주는 암울한 역사의 암호였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 피는 수많은 이념적 사생아를 낳았다. 그들은 과거 386으로 불렸고 지금은 486 혹은 586으로 불린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들 대부분은 사회의 기성세대가 됐다. 광주도 더 이상 역사의 암울한 암호가 아닌 어엿한 지명으로 다시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는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 같다. 광주를 찾은 여야 대표들이 심한 항의와 야유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과거 청산’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하지만 나치를 경험했던 독일은 ‘과거 청산’ 대신 ‘과거 극복(Vergangenheitsbewaeltigung)’이라는 단어를 쓴다. 즉, 깨끗이 한다는 의미의 ‘청산’ 대신 ‘극복’이라는 말의 의미에 방점을 둔다.

독일인들은 역사라는 이름의 지나간 시간들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다. 독일인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역사는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해석’임은 분명하다. 해석에 따라 사안의 성격이 변하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시간자체를 지우거나 없앨 수는 없다.

그래서 청산이라는 단어보다는 극복이라는 단어로 역사를 접근하려 하는 것 같다.

또 극복이라는 단어는 청산보다 이성적 차원의 역사 접근을 의미한다. 이런 접근은 감성적 차원의 접근보다 역사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 훨씬 쉽게 만든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난 5ㆍ18 전야제에 참석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둘 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곤혹스러운 일을 당했다. 김무성 대표는 물세례를 받았고, 문재인 대표 역시 주민들의 야유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김무성 대표는 YS계에 정치적 뿌리를 두고 있는 인물이다. 오히려 전두환 정권에게 박해를 받았으면 받았지 이에 동조했던 인물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문재인 대표는 말할 필요 없는 인권 변호사 출신이다.

한마디로 김무성, 문재인 두 대표 모두 우리나라 민주화에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김무성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을 폐기하라는 이유와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 무산’ 때문에 문전 박대를 당했다.

하지만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대해 김무성 대표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세월호 문제 때문이라면, 세월호와 5ㆍ18이 어떤 연관관계에 있는지 개인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5ㆍ18 광주민주항쟁은 국가 권력을 부당한 방법으로 찬탈한 군부 세력이 국가 공권력을 심각하게 오용한 사건이지만, 세월호 문제는 국가 공권력의 의도적 오용과는 무관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광주에서 봉변을 당한 것을 보면 광주민주항쟁의 본래 의미를 현실 정치에 잘못 대입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역사의 청산 대신 역사의 극복이라는 단어가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역사를 청산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이는 감성적 분노가 주된 추동력으로 등장하지만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여기에는 이성의 힘이 주된 동력이다.

여기서 결코 과거 광주의 역사를 용서를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추상적인 의미의 화해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역사를 극복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극복이 청산보다 훨씬 미래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밝힐 것은 밝히되 미래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자는 데 극복의 목적이 있기에, 이제는 역사의 극복을 생각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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