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바람난세계사] 나이팅게일은 ‘냉정한 행정가’였다
HOOC| 2015-06-01 10:16
[HOOC=이정아 기자]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떠올릴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입니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헌신적으로 부상병을 돌본 간호사이자 죽어가는 병사의 침상을 자애의 빛으로 신성하게 만드는 가냘픈 여인. 그러나 ‘진짜’ 나이팅게일은 손쉬운 상상으로 채색되는 이미지와 달랐습니다. 그녀에게 덧입혀진 이미지는 오히려 개혁과 도덕주의 시대였던 영국의 19세기에 맞아떨어지는 것이었죠.

1820년 5월, 나이팅게일은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란 나이팅게일. 그런데 열일곱 살 때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던 그녀가 돌연 간호사가 되겠다고 선언합니다.

‘백의의 천사’라기 보다 ‘철저한 행정가’에 가까웠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데 평생을 바치겠어요.”

그녀의 가족은 결사반대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까지만 해도 간호사는 무식하고, 불결하고, 부도덕한 직업으로 여겨졌기에 나이팅게일처럼 버젓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인이 가질 직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내가 식모가 되겠다고 말한 것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은 당시 가족의 반응을 훗날 이렇게 회고합니다.

가족의 거센 반대는 그녀의 의지를 꺾지 못합니다. 틈틈이 의학 서적을 읽었고 인근의 병원과 빈민수용소를 찾아다녔습니다. 끝내 33세인 1853년에는 런던에 있는 작은 자선요양소의 책임자가 되기까지 하고요. 이제는 부모도 나이팅게일의 일에 크게 간섭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까지 깡그리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쿠타리 야전병원으로 온 나이팅게일. 제리 배럿 그림.

그런 나이팅게일에게 자신의 뜻을 펼칠 시간이 다가옵니다. 흑해 북부의 크림 반도를 두고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 간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죠. ‘크림 전쟁’입니다. 오스만 제국을 지원한 영국군의 사상자가 잇따르자 그녀를 비롯한 38명의 간호사들이 이듬해 11월 보스포루스 해협의 아시아 땅에 위치한 스쿠타리의 야전병원에 파견됩니다.

‘간호사’의 대명사인 나이팅게일이지만 크림 전쟁에서 그녀가 한 일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간호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은 철저한 관리자로서 병원 체계를 하나하나 세우는 것부터 돌입했죠. 웬만한 자선병원과 빈민가의 참상에도 눈 하나 꿈쩍 않았던 그녀조차도 질렸을 정도로 야전병원의 환경이 최악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이팅게일이 온 지 1년 반이 지난 1856년 봄 스쿠타리 병원의 병실과 환자들. 윌리엄 심프슨 그림.

관청에 만연한 관료주의와 병사를 소모품으로 인식하는 영국군 장교들과의 씨름하면서 그녀는 병원 내 엄격한 규율, 정밀한 계산으로 병원을 정비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나이팅게일의 이미지는 ‘천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다루기 힘든 권력에 대한 자신의 지배를 키워간 건 온화한 친절과 자기희생을 통해 이뤄진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나이팅게일은 냉정했습니다. 그런 태도 밑에는 열정적인 불꽃이 숨어 있었고요.

그리하여 나이팅게일이 온 지 6개월이 지난 1855년 봄이 되면서 야전병원의 상황이 놀랍게 호전됩니다. 철저한 위생 관리 덕분에 환자의 사망률은 42%에서 2%로 뚝 떨어졌고, 보급품도 제때 맞춰 병원에 도착하게 됩니다. 전장은 물론이고 본국에서도 그녀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고, 빅토리아 여왕도 치하를 보냈습니다. 1856년 2월에 파리 협정이 체결되면서 3년여 만에 전쟁이 끝나자, 그해 7월 그녀는 대중들의 환호 속에 영국으로 귀국합니다.



(*) ‘램프를 든 숙녀’라는 이미지는 나이팅게일 보다 자메이카 출신의 간호사 메리 시콜에게 더 맞습니다. 나이팅게일이 스쿠타리에서 일하는 동안, 시콜은 최전선인 세바스토폴에서 8㎞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스프링 힐에 의료 보급창과 치료소를 설치해 부상병을 치료했기 때문이죠. 이런 헌신 때문에 크림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은 그녀를 진정한 ‘군대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크림 전쟁이 끝난 뒤 그녀는 가난과 병마로 힘든 생을 보내다 세상에서 잊혀집니다.



(*) 참고문헌= 리튼 스트레이치, 『빅토리아 시대 명사들』(이태숙 옮김, 경희대학교 출판국, 2003)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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