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속 생계형범죄 급증…작년 환형유치자 4만 2871명
분할납부 안돼 벌금납부 포기 일쑤
# 서울 강남구에 사는 박정규(39ㆍ가명) 씨는 지난해 12월 150만원이 쓰여있는 벌금 통지서를 받았다. 사업에 실패한 후 1년여 간 개인 자가용을 이용한 불법 택시인 이른바 ‘나라시’를 운행하다 경찰 단속에 적발된 것이다.
박씨는 “매일매일 벌어 먹고 사는데, 아이를 굶기며까지 목돈 150만원을 마련할 수 없다”며 검찰에 분할납부가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벌금 내기를 차일피일 미뤘더니 몇차례 경고장이 날라왔고 급기야 수배자 신세가 됐다. 벌금을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서 몸으로 죗값을 치르는 이른바 ‘환형유치자’가 해마다 4만명에 이르는 등 갈수록 증가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돼 지은 죄보다 큰 형벌을 받아야 하는 ‘장발장’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4일 법무부에 따르면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형을 받는 환형유치자 규모는 2012년 3만9283명에서 2013년 4만82명, 2014년 4만2871명으로 해마다 커지고 있다.
벌금형은 일반적으로 징역ㆍ금고 등 자유형보다 죄질이 가벼운 범죄에 선고된다. 최근에는 경범에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에 따라 벌금형의 선고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다. 벌금을 낼 수 있으면 교도소에 가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빈곤계층이 늘어나면서 생계형 범죄 등 가벼운 죄질로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돈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영어의 몸’이 될 수 밖에 없는 이들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생계형 범죄를 범한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미성년자 등을 대상으로 최대 300만원을 빌려주는 ‘장발장 은행’이 지난 2월 설립되긴 했지만 혜택을 받는 이들은 현재까지 155명으로 환형 유치자 규모에 비교하면 크게 적은 규모다.
현 제도는 벌금 분할납부가 불가능하고 선고받고 30일 이내에 한꺼번에 납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기간에 목돈을 마련할 길이 없는 빈곤층에겐 벌금형이 곧 교도소행을 의미하는 셈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장발장은행 대표)은 “징역형에는 집행유예가 있는데,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벌인 벌금형에는 이마저도 없어 불평등하다”며 “벌금 미납으로 감옥에 가게 되면 가족관계도 단절되고 있던 직장마저도 잃을 가능성이 높아 생계에 더욱 치명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최정학 방송통신대 법대 교수는 “소득수준에 비례해 벌금을 차등적으로 매기는 ‘일수벌금제’가 현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안이 될 것”이라며 “독일 등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 이를 채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