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지난 3일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 환자가 다녀간 병원, 메르스 국가 지정 격리병원 등 메르스 관련 병원을 일반 국민에게 일절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메르스 공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내 한 병원의 마스크를 쓴 손님들이 지나가는 풍경에선 극도의 긴장감도 느껴진다. 메르스를 예방하기 위해선 손 씻기 등 원칙에 충실한 개인 위생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
청와대는 그 이유로 병원을 공개할 경우 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하고 있는 병원을 기피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러나 공개 불가 방침에 대한 반론은 여전히 비등한 상황이다.
SNS 등에서 최소 4개 버전 이상의 ‘메르스 병원’ 명단이 떠돌고 있는 데 대해 보건의료노조 한미정 사무처장은 “다른 정보는 몰라도 과거 무방비 상태에서 환자가 접촉한 병원, 지역명은 명확히 공개해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명단 공개 시 병원 기피 우려에 대해 한 사무처장은 “환자 방문 뒤 문제 없는 병원은 문제가 없다고 정부 이름으로 명확히 알려주면 된다. 그게 정부의 책임있는 자세”라고 말했다.
복수의 의료계 관계자들은 현재 유포되고 있는 병원 명단의 약 70%는 메르스 관련 병원이 맞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그러나 누락된 병원도 있고, 전혀 아닌 병원도 섞여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애꿎은 병원만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명단에 나온 A 병원은 이 명단을 게시했던 B 병원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명단 공개 불가 방침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다 보니 정부의 방침에 대한 온갖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보건ㆍ의료계 한 관계자는 “병원 간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메르스 병원이 공개되면 손님이 끊겨 문을 닫을 수 있다는 병원 업계의 우려를 정부가 감안해주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중론”이라고 전했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정부의 명단 공개 불가 방침은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잘못된 세월호 전원 구조 발표로 치명타를 입었던 정부가 이 ‘학습효과’로 인해 병원 명단과 감염 경로 등의 공식 발표를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발표했다가 부정확한 것으로 드러나면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처 한 공무원은 “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부도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공개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의사가 지난 2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으나 정부의 3일 집계 현황 발표에는 누락됐던 점 등이 이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병원 명단 등의 비공개 방침으로 국민과 의료기관에 정부 신뢰가 바닥난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2009년 신종플루 때 공공병원인 서울대병원이 환자를 거부했다가 언론과 정부 압력에 병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환자를 치료했었는데, 이번에도 정부가 어떤 강제 조치를 명령하려면 신뢰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 신뢰가 지금 바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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