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르스 포비아’ 영화속 대한민국의 자화상
HOOC| 2015-06-11 07:48
[HOOC] 같은 영화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MERS) 확산에 따른 공포가 만연하면서, 전염병 소재의 영화들도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그간 전염성 질병에 따른 재난 상황은 오락영화로 꾸준히 소비됐죠. 가깝게는 한국영화 ‘감기’(2013)부터, 전염성 바이러스 소재의 ‘아웃 브레이크’(1995), 외계생명체의 신체 강탈을 다룬 ‘인베이젼’(2007), 자살 바이러스를 다룬 ‘해프닝’(2008) 등 일일히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는 전염성 바이러스가 가져올 재앙이 대중들에게 더이상 허무맹랑한 가설 만은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영화 컨테이젼 포스터 중 일부.

실제 역사가 그랬죠. 14세기 중세시대에 창궐한 흑사병(페스트)은 1억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가깝게는 19세기 콜레라, 21세기 사스와 신종플루, 에볼라 등이 인류를 위협했죠. 올해 초 옥스포드대 연구소는 ‘세상의 종말을 이끄는 12가지 시나리오’ 보고서를 통해 ‘세계적인 전염병’을 인류 멸명 원인 1순위로 꼽았습니다.

메르스 공포가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 중 한 편이 ‘컨테이젼’(2006)이었습니다.

치명적 바이러스를 다룬 영화 상당 수가 외계생명체가 개입하는 등 SF적 요소가 있다면, 가장 현실에 밀착한 듯 보이는 영화가 ‘컨테이젼’ 입니다. 영화는 배우 기네스 펠트로의 기침 소리와 함께 시작합니다. 이내 홍콩, 런던, 도쿄 등 전 세계 각지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콜록이는 사람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죠.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호흡기는 물론 일상 생활에서의 접촉 만으로도 감염되는 이 바이러스는 무서운 속도로 세계 전역에 퍼져나갑니다. 마침내 백신이 개발되지만 세상은 이미 무법천지로 변해버린 지 오래.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은 백신을 쟁탈하기 위해 절도와 방화, 살인을 저지르며 ‘괴물’이 되어갑니다.

‘컨테이젼’은 바이러스 소재부터 이에 대응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까지 대한민국의 현실과 닮아 있습니다. 영화 속 전염병은 치료법도 없고 백신도 없습니다. 메르스도 마찬가지죠. 게다가 바이러스가 변이하면서 재생수(환자 한 명으로 인한 재감염 수)가 2배에서 4배, 16배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전체 인구의 1% 사망이 예상되는 ‘팬데믹’(대유행) 단계에 이릅니다. 

영화 컨테이젼의 한 장면.

질병통제센터의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는 전염 초기만 해도 “늑장 대응으로 국민 죽이는 것보다 과잉대응으로 비난 받는 게 낫다”며 사태 해결에 의욕을 보입니다. 이내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자 좌절합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관료들은 ‘아직 원인도 모르는데 시민들을 겁줄 필요가 있느냐’, ‘격리실 예산은 누가 부담하느냐’며 안이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 와중에 프리랜서 기자 앨런(주드 로)은 대중의 불안감을 이용, 음모론을 주장하며 가짜 치료제로 돈벌이에 나서죠.

정부와 보건당국, 언론이 제 이해득실을 따질 동안, 바이러스의 공포에서 딸을 지켜내는 것은 평범한 가장(멧 데이먼)입니다. 바이러스에 노출돼 죽어가면서도 다른 환자를 돌보는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슬렛), 바이러스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오란테스 박사(마리옹 꼬띠아르), 우여곡절 끝에 백신 연구에 성공하는 연구원 앨리(제니퍼 엘), 자신의 백신을 어린 소년에게 양보하는 치버 박사 등 영웅적 개인들이 그나마 위안을 줍니다. 메르스 확산 사태에 속수무책인 현실을 보면서, ‘아무 것도 만지지 말고, 누구도 만나지 말라’는 과장된 포스터 카피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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