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에너지 공룡들의 합종연횡.. 한국은 왜 잠잠할까
뉴스종합| 2015-06-21 16:34
[헤럴드경제=김윤희 기자]한때 재벌들의 문어발 경영이 매번 도마 위에 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돈이 된다 싶으면 일단 발부터 들여놓으면서 전자회사가 건설, 외식, 화학, 의류까지 수백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들이 허다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알짜배기 자회사라도 가차없이 팔아버리는 일이 빈번합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을 꾀하면서 입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자 기업들은 이제 새로운 사업에서 고속 성장을 기대하기 보다는, 가장 잘하는 사업으로 승부를 보려하기 때문입니다. 안되는 사업은 팔고, 잘 되는 사업에 다시 투자합니다. 잘되는 사업이더라도 좋은 가격에 팔아서 ‘총알’을 만드는 것입니다.

기업들의 이같은 사업재편은 이미 해외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제가 담당하는 ‘에너지ㆍ화학’ 분야에서는 유례없는 저유가 기조와 맞물려 서로 팔고 사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네덜란드의 로얄더치셸은 올해까지 150억달러의 자산 매각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BP도 1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떨쳐낼 계획입니다. 원유 가격이 하락하면서 회사 실적이 덩달아 하락하자 비핵심 자산을 매각해 사업구조를 재편하려는 것입니다.
<사진>지난해 11월 한화그룹과 대규모 M&A를 진행한 삼성그룹의 서초동 사옥.
대신 로얄더치셸은 이런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한 ‘총알’로 영국의 BG그룹을 470억 파운드에 인수했습니다. 세계 2위 원유업체와 세계 3위 천연가스 회사의 만남이지요. 사업가치가 급락한 BG를 사들인 덕분에 로얄더치셸은 세계 최대 LNG 기업의 위치를 공고히하게 됐습니다.

세계 1위 에너지회사인 엑손모빌의 M&A설도 솔솔 흘러나옵니다. 엑손모빌에서는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조만간 영국의 BP사를 사들일 수 있다는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에너지회사들이 앞다퉈 몸집을 키우자 중국 정부의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중국 정부는 최근 CNPC와 시노펙, CNOOC와 시노켐간의 합병을 염두에 두고 타당성 조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CNPC와 시노펙 양사간 합병으로 탄생한 기업은 엑손모빌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 석유기업으로 부상할 전망이어서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 합병사는 중국 석유가스 생산의 77%, 석유판매의 90%를 차지하게 되고, 시가총액 기준으로 CNPC는 3110달러, 시노펙은 1110억달러, 합병 이후 4220억에 달합니다. 3940억 달러인 미국의 엑손모빌을 능가하게 되는 것이지요. 중국 정부는 이런 합병을 통해 국제 석유시장에서 자국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기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올 들어 M&A 거래액이 5년이래 최저치로 감소해 ‘M&A 무풍지대’로 불리고 있습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올 1분기 국내 M&A 시장 거래액은 11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3.8% 줄어들었습니다. 삼성과 한화그룹의 ‘빅딜’의 거래액이 포함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M&A와 관련한 각종 규제와 부정적인 사회분위기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재계의 공통적인 지적입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M&A를 저해하는 요인을 없애는 ‘M&A 활성화 대책’을 발표한데 이어 올해는 일명 ‘원샷법’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기업결합 심사 기간을 단축하고,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제한하는 등 관련 법안들을 개정해 기업의 사업재편을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일부 산업이 공급과잉에 처해있는 일본에서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2003~2013년 산업활력재생특별조치법을 통해 197개 업종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합병을 원치않는 소액주주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않습니다. 소액주주가 합병을 원치않을 때 그의 주식을 사가라고 요구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 제한이 대표적입니다. 지난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합병을 추진했는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많아 무산된 적이 있지요. 기업들은 이런 소액주주들의 권리가 사업재편의 걸림돌이 될 수 있어일부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권리가 무시되면 소액주주들의 대기업들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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