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백기사’에 자사주 처분제한 법안까지...공격받는 기업경영권
뉴스종합| 2015-06-24 09:32
[헤럴드경제=김윤희 기자]제2의 엘리엇 사태를 막는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대주주의 지배권 남용을 막는 법안들만 속속 제출되고 있다. 심지어 백기사에 자사주 처분을 제한함으로써 경영권방어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법안도 발의됐다. 국회가 대주주의 지배권 남용 방지에 집중하면, 실제 소액주주가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해외 투기자본만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우윤근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법개정안을 비롯해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를 골자로하는 개정안들이 다수 국회에 계류 중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영주 의원이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이상민 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도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정호준 의원과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이 각각 발의한 상법개정안도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그 골자다.

그중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식의 1%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지만, 자칫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기업들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지주회사 형태로 여러개의 자회사를 거느리는 대기업들은 다중대표소송에 노출될 위험이 매우 크다. 모회사, 즉 지주회사의 지분을 확보한 뒤 자회사에 대해 소송을 남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기세력이 모회사 지분을 인수한 뒤 자회사에 대한 소송을 제기해 주가를 떨어뜨리고, 주식을 매집하는 형태의 주가조작도 가능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비슷한 제도가 실제 활용되는 미국에서도 매우 제한적인 요건에서만 사용되고, 그외 국가에서도 모회사가 자회사를 100% 지배하는 완전 모자회사의 경우에 한해 입법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해외에서도 전면도입된 유례가 없는 만큼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대주주 지배권 남용 방지에 대한 법률 마련에 치중하고있는 가운데 일선 기업들은 정작 헤지펀드등으로부터의 적대적인 M&A를 막을 방어수단이 미흡해 외국자본의 공격에 항상 노출돼있는 실정이다.

소수주주가 이사로 선임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집중투표제에 대해서도 찬반의 목소리가 높다. 집중투표제는 1주를 가진 주주가 선임할 이사 수와 동일한 의결권을 갖고, 사내외 이사 구분없이 이사 후보자 한명 또는 여러명에게 집중해서 투표할 수 있다. 2004년 소버린이 SK에 우선 요구했던 것이 바로 이 집중투표제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적은 지분으로 표를 몰아사용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이와함께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연합 국회의원 10명은 지난 17일 상장사의 자사주 처분방법을 제한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백기사에 자사주 처분이 제한되는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삼성 계열사 간 합병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겠지만 앞으로 다른 기업은 자사주 매각을 통해 우호지분을 모으는 것이 원천 차단된다.

반면,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수단에 대해서는 국회 논의가 전무한 상태다. 포이즌필은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의 하나로, 적대적 M&A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하는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를 뜻한다. 현재 미국과 프랑스, 일본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또 차등의결권주식 제도는 기업의 지배주주에게 보통주의 몇 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주는 제도로 미국과 캐나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실제 활용되고 있다.

전경련 신석훈 기업정책팀장은 “2007년부터 포이즌필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지만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사실상 입법이 무산됐다. 국회가 지배권 남용을 막는데만 집중하면 실제로 소액주주가 보호되는 게 아니라 투기자본만 이를 악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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