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
[인터뷰] ‘소수의견’ 윤계상 “배우 욕심 지나치면 관객 힘들어”
엔터테인먼트| 2015-06-28 10:00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윤계상(37)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2년 동안 창고에서 묵은 ‘소수의견’(감독 김성제ㆍ제작 ㈜하리마오픽쳐스)이 햇빛을 보게 됐으니 그도 그럴 만 했다. 일년 반 전, 가편집 단계에서 봤을 때도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개봉이 미뤄지는 상황이 그는 안타깝기만 했다. 마침내 완성본을 마주한 윤계상은 “좋은 배우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만족스럽게 나오진 못 했을 것 같다”고 동료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물론, 마냥 즐거워만 할 수 만은 없는 상황도 있다.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을 다룬다는 이유 만으로,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 영화를 보는 시선도 있는 탓이다. ‘소수의견’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윤계상은 “(영화가 정치적 이념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인 것 같다”면서도 “오락용 영화가 있는 반면, 사람들에게 생각하게끔 하는 영화도 분명히 있어야 한다. 감독님이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고 중심을 잘 잡았고, 배우와 스태프 모두 서로의 정의에 따라 열심히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수의견’은 강제 철거 현장에서 두 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서 출발한다. 희생자 한 명은 경찰, 또 다른 한 명은 철거민 박재호(이경영 분)의 아들이다. 박재호는 경찰을 죽인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되고, 국선변호사 윤진원(윤계상 분)은 그의 변호를 맡게 된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살인 사건이 벌어진 현장의 진실을 파헤치는 법정 드라마다. 동시에 ‘윤진원’이라는 인물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윤계상은 윤진원 캐릭터와 자신, 그리고 김성제 감독이 닮은꼴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극 중 윤진원은 지방대 출신의 국선변호사라는 자신의 처지에 자조하던 중, 박재호의 변호를 맡으면서 성장해간다. 윤계상은 스스로를 ‘자존심이 세고 (흥행 면에서) 잘 되고 싶어하지만, 배우로서의 가능성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 진단했다. 옆에서 지켜 본 김성제 감독은 흥행 욕심도 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도 놓치지 않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점에서 윤계상은 이번 작품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고 싶은 열망을 품지만, 결국 그보다 더 소중한 의미를 깨우치게 되는 세 사람(윤진원, 윤계상, 김성제)이 뭉친 듯한 느낌”이었다고 웃어보였다. 

‘소수의견’이 법정 드라마인 만큼, 배우에겐 흡인력 있게 법정 신을 이끌어가는 것이 과제다. 사실 윤계상이 법정에서 변론하는 그림은 언뜻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다. 생활 연기도 능숙하게 해냈고(‘6년째 연애중’,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등) 눈빛 연기도 호평 받았지만(‘비스티 보이즈’, ‘풍산개’ 등), 대사 전달력이 중요한 캐릭터에선 의문 부호가 찍혔다. ‘소수의견’의 윤계상은 전문 용어가 섞인 대사를 막힘 없이 처리하는 것 이상으로, 법정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이었다. 여기에 파트너 유해진의 내공까지 더해지면서, 관객들은 어느 순간 법정에 앉아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법정 신에서 윤계상의 호연은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감독님이 애초에 선전포고하셨어요. 법정 신은 연극처럼 할 테니 동선을 알아서 준비하라고. 대사량이 꽤 많았는데, 그래도 노력하니까 되더라고요. 대사가 되니까 자연스럽게 호흡이 안정되고 동선도 편해졌어요. ‘이끼’에서 유해진 선배님의 연기는 정말 최고잖아요. 어떻게 연습하셨는지 물어보니 한 달 동안 눈 뜨면 그 대사만 연습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유해진 선배님 같은 뛰어난 배우도 그렇게 연습하는데 제가 어떻게 안 할 수 있겠어요?(웃음)”

윤계상의 연기 욕심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지난 해 영화 ‘레드카펫’ 개봉 당시 윤계상은 부쩍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기자들과 마주했다. 그 변화의 내막인 즉 이랬다. 연기를 시작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던 때, 그는 스스로를 다그치고 자학하는 방식으로 연기를 끄집어냈다. ‘소수의견’을 촬영할 무렵부터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올라 왔다’. 이제는 자신이 돋보일 수 있는 연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보는 시야가 생겼고 상대와 호흡하는 묘미도 알아가게 됐다.

“연기를 조금 해보니 배우의 욕심이 지나치면 관객들이 버거워한다는 걸 알았어요. 제가 과거에 그렇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이번엔 캐스팅 되고 준비하면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 관심이 많이 갔어요. 모두가 각 역할에 캐스팅 된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제가 ‘윤진원이 여기서 화내지 않을까’ 얘기하면, 감독님은 ‘이 장면에선 장대성(유해진 분)이 화를 낼 거야’, ‘여기선 공수경(김옥빈 분)이 너를 화나게 할 거야’라고 하셨죠. 결국 상대 배우의 연기에 몰입하다 보면 제 리액션도 좋아질 수 밖에 없더라고요.”

윤계상도 어느덧 연기 경력 12년 차에 접어들었다. ‘가수’보다 ‘배우’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러워진 지도 오래다. 사실 윤계상은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인정받았지만, 한동안 부당하게 ‘연기자 흉내내는 가수’라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그룹의 일원이라는 왕관의 무게는 그토록 무거웠다. 대중들이 연기하는 윤계상을 인정하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그 시간을 넋 놓고 흘려보냈다면 지금의 윤계상은 없었을 터. 부단한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10년 전 군대에 있을 때 영화나 드라마를 못 보겠더라고요. 연기가 너무 하고 싶어져서…. 그러다 첫 휴가를 나와서 ‘주먹이 운다’를 보는데, 최민식· 류승범 배우의 연기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저게 본능적인 걸까 계산된 연기일까, 여러 생각을 하면서 연기 연습에만 매달렸던 기억이 나요. 발음 연습부터 눈빛 연기까지, 밤새 연습한 적도 있어요. 연기는 지금도 정말 잘 하고 싶어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재미있거든요.”

ham@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