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역사의 민낯-승정원일기 21] 왕의 부끄러움
라이프| 2015-07-07 07:40
맹자(孟子)는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워질 일이 없을 것이다.[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라고 하였다. 부끄러워질 일이 없으려면 늘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할까? 특히 한 나라를 책임진 임금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영조는 훗날 정조가 되는 세손의 한 마디에 부끄러워진다.

1762년(영조38) 9월9일 영조가 경현당에 나아가 유생(儒生)의 전강(殿講)과 제술(製述) 시험을 실시하면서 동궁에게 그 자리에 함께 하도록 하였다. 이때 생원 박광순이 나와 엎드렸는데, 행색이 초라했다.

영조 : “곤궁한 유생이로구나. 이 유생을 보니 어떤 생각이 드느냐?”
동궁 : “참 잔인합니다.”
영조 : “임금이 어떻게 하면 이런 유생에게 좋은 옷을 입힐 수 있겠느냐?”
동궁 : “임금이 어질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영조 : (웃으며) “내가 부끄럽게 되었구나.”
정조가 사용하던 연잎 모양 벼루(荷葉硯)
이 당시 정조의 나이는 11살이었다. 헐벗은 유생을 보며 영조가 세손에게 소감을 묻자, 동궁은 참 잔인하다고 대답한다. 차마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는 뜻에서 한 말로 보인다. 영조가 이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자 임금이 어질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답한다. 원론적인 대답이었겠지만 뒤집어서 보면 임금이 어질지 못하기 때문에 유생이 저렇게 헐벗은 것이 아니겠느냐는 뜻으로 보일 수도 있는 대답이다. 하지만 영조는 어린 손자의 말을 듣고 부끄럽게 되었노라고 웃으며 고백한다. 백성이 주리고 헐벗는 것은 임금으로서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부끄러움임을 잘 알고 있어서였으리라.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하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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