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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왕실3-스페인] 독일계일 때 최강...루이14세 후손 계승 이후 쇠퇴
뉴스종합| 2015-07-16 07:50
[헤럴드경제=이수민 기자] 이베리아 반도는 로마제국 멸망 후 잠시 게르만족이 다스렸지만 8세기부터 80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이슬람 왕국이 지배했다.

1469년 프랑크족 국가인 아라곤왕국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 왕국 이사벨1세와의 결혼으로 합쳐지고,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 있던 이슬람 세력을들 축출, 스페인왕국이 탄생한다.

출발은 독일계 합스부르크 왕가=페르난도-이사벨 부부의 외손자로 스페인 국왕에 즉위한 카를5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다. 유럽 최대세력을 자랑하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다스리면서 스페인은 활발한 식민지 개척에 나서 17세기까지 세계 최강 제국의 지위를 누린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의 원조도 스페인이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스페인왕 카를로스2세는 오랜 근친혼으로 건강이 나빠 자식을 낳지 못한다. 결국 이복 누이의 외손자이자,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절대군주 루이14세의 손자인 앙주 공작 필리페 5세가 스페인 왕위를 잇는다.

프랑스계 부르봉 왕가의 계승=필리페5세 등극 사실이 알려지자 합스부르크 왕가인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1세가 스페인 왕위의 계승권을 주장하면서 전쟁이 발발한다. 프랑스가 스페인까지 집어 삼킬 것을 두려워 한 영국, 포르투갈, 네덜란드 공화국 등도 신성로마제국에 힘을 보탰다. 40만여명의 인명 피해를 낸 대규모 전쟁 끝에 펠리페5세는 스페인 왕위만 계승하고, 프랑스 왕위계승권은 포기한다. 프랑스의 세력확장을 막기 위한 주변국의 이해가 반영된 결과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출생해 루이14세와 아버지로부터 궁정 교육을 받고 자란 펠리페5세는 프랑스 체제와 유사하게 스페인을 중앙집권화하면서 왕권을 강화해 나갔다.

이후 나폴레옹군의 침략에 잠시 왕좌를 내주었던 페르난도7세가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복위되고, 1년도 채 이어지지 못한 제1공화국 이후의 부르봉 왕조의 재건, 독재로 얼룩졌던 제2공화국 이후의 왕정 복고로 스페인 부르봉 왕가의 역사는 현재에 이른다.

두 차례의 공화정 겪어=스페인 왕가는 두 차례나 공화정을 거쳐야 했다. 페르난도7세를 이은 이사벨라2세 때는 35년 동안 열다섯 차례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헌법도 여섯 차례나 바뀌었다. 결국 자유진보 민주파였던 후안 프림 장군의 혁명으로 이사벨라2세는 프랑스로 도피했다.

후안 프림은 왕위 계승권을 일부 갖고 있던 이탈리아 사보이 왕가의 아마데오를 허수아비 왕으로 옹립했지만 스스로 퇴위, 스페인은 다시 공화정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공화정은 11개월동안 네 명의 대통령을 거치는 등 혼란만 거듭했고, 결국 이사벨라2세의 아들 알폰소 왕자가 왕정을 잇는다. 그런데 알폰소13세도 사회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이 나타나 정권을 잡았다. 이후 실시된 지방 선거에서 공화파가 대거 진출, 다시 공화정을 수립했다. 하지만 공화정에 반대해 좌천됐던 프랑코가 반정부 쿠데타를 일으켰고, 내전을 거쳐 권력을 장악한다. 프랑코는 왕정 지지자 답게 후계자로 알폰소13세의 손자 후안 카를로스1세를 지명했고, 그의 사후 스페인은 다시 왕정으로 돌아간다.

smstor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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