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역사의 민낯-승정원일기 23] 술 마신 유모의 젖을 먹은 세손
라이프| 2015-07-28 07:47
영조 28년 3월 4일,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아들이고, 정조의 형인 의소세손(懿昭世孫)이 심한 설사 증세로 앓다가 3세의 어린나이로 세상을 뜬다.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영조 28년 2월 2일 미시(未時), 상(임금)이 경춘전에 나아갔다. 약방의 세 제조와 어영대장이 함께 입시한 자리였다.

영조: “오늘 입진했을 때 세손을 본 것에 대해 모두 진달하라.”

홍봉한 : “우황고 2환을 썼는데, 오늘 조금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영조 : “의관들이 본 것을 진달하라.”

김수규 : “밤에 자는 것은 조금 나아졌고, 간간이 젖을 빤다고 하여 신들은 조금 나아지리라 기대했는데, 설사를 11차례나 해서, 기운이 다 빠졌습니다.”(중략)

영조 : “유모가 술을 자주 마신다. 심한 경우, 밤에도 술을 마셔서 젖에 젖은 아이의 옷에서도 술 냄새가 난다.”

김약로 : “유모가 술을 마시는 것은 매우 금기시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신이 이 이야기를 듣기 전에도 경계하는 말을 했습니다.”

영조 : “술을 마시고 젖을 물리면 어찌 술기운이 전해지지 않겠는가.”

세손이 설사를 하는 원인을 찾다가 유모가 술을 마시고 젖을 물리는 것을 언급한다. 소주를 마시는 것은 장과 위에 해로운데 유모가 밤마다 술을 마시니, 그 기운이 젖을 통해 세손에게 흘러들어 나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추론이다. 이후 설사를 멎게 하는 약에 대해 상의하는 대화가 오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젖을 물린 유모를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신하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영조 또한 안타까워할 뿐 유모에 대해 이렇다 할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아기를 맡아 키우는 공이 있어 함부로 명령하지 않고 예우를 갖추었다고 보기에는 그 과오가 너무나 큰 것임에도 불구하고 임금과 신하 모두가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것이 의아할 뿐이다.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하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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