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
[단독] ‘마당을 나온 암탉’ 감독, 이번엔 ‘유기견’ 그린다
엔터테인먼트| 2015-07-30 07:00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한국에서 ‘인사이드 아웃’같은 애니메이션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나오지.’

디즈니·픽사의 ‘인사이드 아웃’이 300만 관객을 모으는 동안,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실을 비관하는 반응이 으레 나왔다. 지난 해 ‘겨울왕국’이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모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 ‘렛 잇 고’를 흥얼거리고, 엘사의 드레스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대중들은 한국에선 왜 ‘겨울왕국’이 나오지 못할까 한숨 쉬었다. 냉소보다는 아쉬움이 읽히는 반응이었다. 만듦새만 훌륭하다면 국내 관객 누구나 익숙한 문화와 정서를 담은 국산 애니메이션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다.

극장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이 사라진 지금,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우리는 이미 한국 애니메이션의 희망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2011년 개봉한 ‘마당을 나온 암탉’(이하 ‘마당’)은 220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 흥행작에 이름을 올렸다. 이전까지 최고 흥행 기록은 2007년 디지털 복원판으로 재개봉한 ‘로보트 태권V’의 70여 만 명. 스코어보다 고무적인 것은 유아나 어린이용 콘텐츠로 인식됐던 국산 애니메이션이, ‘마당’을 계기로 청소년·성인층까지 타깃을 확장했다는 점이다. 2015년 현재까지 ‘마당’이 세운 흥행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2017년 개봉 예정인 애니메이션 '언더독'의 포스터 [제공=오돌또기]

한국 애니메이션의 진일보를 이룬 오성윤 감독(52)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계원예술대학교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오성윤 감독은 다시 출발선에 선 마음으로 차기작 ‘언더독’(제작 오돌또기,드림써치 C&C) 준비에 한창이다. 이번엔 ‘마당’의 애니메이션 감독이었던 이춘백 감독과의 공동 연출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1위 ‘마당’을 제작한 오돌또기와 흥행 2위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110만 명)을 제작한 드림써치 C&C가 손잡고 또 다른 흥행 신화를 쓰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언더독’은 버려진 애완견 ‘뭉치’를 중심으로, 인간이 없는 곳을 찾아 떠난 유기견들의 모험을 담는다. 시나리오 작업에만 무려 3년의 시간이 걸렸다. 동화 원작을 각색했던 전작도 까다로웠지만, 순수 창작하는 스트레스는 그 이상이었다. 오 감독은 7번의 탈고 끝에 최근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2011)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쓴 오성윤 감독

“‘마당’ 개봉 때였나, 주말 아침에 우연히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봤어요. 눈이 뭉그러진 시츄 한 마리가 카메라를 보는데, 잠결에 꼭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움찔했죠. 유기견 보호소를 취재한 내용이었는데, 시츄의 얼굴과 몸에 그 인생이 다 담겨 있더라고요. 그렇게 유기견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 고민이 컸어요. 제가 추구하는 사실주의(리얼리즘) 성향과 애니의 장점이 어우러진, 철저한 가족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마당’이 온전히 2D 애니메이션이었다면, ‘언더독’은 그림 자체는 2D 느낌을 유지하면서 3D 애니메이션 기술을 접목할 계획이다. 이 경우 캐릭터들의 동작이 자연스러워질 뿐 아니라, 한층 다채로운 색상을 입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다른 도전은 콘티 없이 시나리오 만을 가지고 목소리 녹음을 한다는 것. 콘티 편집본을 보면서 목소리를 녹음할 경우, 콘티 연출에 연기자들이 얽매일 수 밖에 없었다. 시나리오만 주고 녹음하는 방식이라면, 연기자가 캐릭터를 분석하고 자유 연기를 펼치는 등 각자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오 감독은 기대했다.
'언더독'의 유기견 무리 중 하나인 '토리' 캐릭터
'언더독'의 콘티 일부

‘언더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내 생명의 주인은 나’라는 것. 이는 곧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시에 내 삶이 온전히 내 것이었으면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인간의 비애와도 맞닿아 있다. 오 감독은 “자기 정체성을 깨닫고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먹고 사는 것에 떠밀려 정체성을 숨기거나 지워가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뭉치’는 인간에 의해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건 제 얘기이기도 하다. 내가 뭘 하고 싶어하는 사람인 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 끝내 도달하진 못하더라도, 이상적인 삶을 향해 계속 노력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는 미술팀과 연출팀 등 10여 명이 ‘언더독’의 콘티를 작업 중이다.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현 단계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 만이 출근하고 있다. 연말 쯤 콘티 작업이 끝나면, 촬영팀과 외주업체 인력을 포함해 100여 명 규모의 제작팀이 꾸려질 전망이다. ‘언더독’의 예산은 총 53억 원(순 제작비 33억 원) 수준으로, 전작과 비슷하거나 조금 뛸 전망이다. 2017년 여름 개봉이 목표다.



<“‘인사이드 아웃’요? 보면서 창피했어요”>

“‘인사이드 아웃’을 너무 재밌게 봤어요. 보면서 창피하기도 했어요. 한국의 장편, 3D 애니메이션 회사들은 어떤 미래를 그리면서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고 있나 반성도 했죠.”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오성윤 감독의 얼굴이 그늘졌다. 오 감독은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의 인프라가 기형적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인사이드 아웃’의 경우 어린이보다 청소년이나 성인 관객에게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의 창작 애니메이션은 대부분이 시장이 큰 유아용 콘텐츠에 몰려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작가적 성향을 띤 성인 애니메이션으로 연령대가 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고등학생 타깃의 ‘허리’가 없는 것이다. 오 감독은 “한국에 ‘인사이드 아웃’의 시나리오가 있더라도, 투자·배급을 맡겠다고 나서는 곳이 있었을까 싶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국내 대형 제작·배급사들이 성공 사례가 많지 않은 가족용 애니메이션에 투자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IPTV나 캐릭터 사업 등 부가가치 수입이 보장되는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집중하는 쪽이 이들 입장에선 실속 있다.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중하는 정부의 정책도 창작자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이유다. 관련 기관들은 지원을 통해 (애니메이션)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게 아니라, 우선 산업부터 활성화시켜야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오 감독은 “이건 ‘돈 벌어서 기부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방식으로 창의적 경쟁력이 좋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마당’이 성공할 당시에 ‘원 오브 뎀(여럿 중 하나)’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결국 반쯤은 현실이 됐어요. ‘마당’보다 타깃 연령층이 올라간 ‘언더독’이 잘 된다면, 이 작품으로 인해 가족용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이나 시선이 바뀌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유아 타깃 콘텐츠에 편중된 업계 인프라도 청소년·가족 타깃으로 분산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마당’보다 ‘언더독’이 더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고 생각해요. ‘마당’에 제 운명을 걸었다면, ‘언더독’은 저를 포함한 전체(업계)의 운명을 건 작품이나 다름 없어요.”

ham@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