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커니즘 분석아닌 실제 효과에 집중…“단순 플라시보 효과일뿐” 증명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현대의학의 치료를 기대하기 힘든 말기암 환자들에게 대체의학은 마지막 비상구로 여겨지곤 한다. ‘해독요법’ ‘면역력 강화’ ‘약초 요법’ ‘자석 요법’ 등 각종 대체의학이 ‘효과를 봤다’는 입소문을 타고 번성하는 이유다. 이들은 대체로 과학적 설명을 곁들이고 있지만 사실상 의학적 메커니즘이 제대로 밝혀진 것은 드물어 늘 논란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의학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서는 건 학자로선 여간한 모험이 아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입자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이먼 싱과 영국 엑서터대에 대체의학과를 설립한 에트차르트 에른스트 교수가 쓴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윤출판)는 대체의학에 정통한 교수가 밝혀낸 진실이라는 점에서 더 눈길이 간다. 사이먼 싱은 이 책으로 영국 카이로프랙틱협회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는 수난을 겪었지만 3년 법정 다툼 끝에 이겼다.
저자들이 침과 약초, 동종요법, 카이로프랙틱 등 흔히 알려진 대체의학에 들이댄 잣대는 엄정한 과학이다. 치료 메커니즘 대신 대체의학의 실제 효과에 주목한 것이다. 일명 근거중심의학이다. 임상시험으로 얻은 결과가 과학적 근거를 갖추고만 있다면 얼마든지 주류의학으로 받아들인다는 관점이다. 사실 어떤 치료법은 처음에는 이단시되곤 한다. 18세기 초 제임스 린드가 영국 수병들 사이에 유행했던 괴혈병을 대조군 실험을 통해 효과를 입증한 레몬과 오렌지 요법도 당시로선 대체의학으로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적은 대체의학의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다. 어떤 치료법이 효과가 있고 어떤 치료법이 효과가 없는가? 어떤 치료법이 안전하고 어떤 치료법이 위험한가? 의사들은 수천년 전부터 모든 종류의 의술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자문해왔다. 그러나 무엇이 효과적이고 효과적이지 않은지, 무엇이 안전하고 위험한지를 구분하는 방법이 개발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 중) |
저자는 환자를 치료군과 대조군으로 나눠 치료효과를 비교하는 대조군 임상시험과 환자는 물론 치료자까지도 모르게 함으로써 심리적 요인을 제거해 실제 치료효과만을 측정하는 ‘이중 맹검시험’, 동일한 치료법에 대한 수많은 임상시험 결과를 종합 분석하는 ’메타분석’으로 대체의학의 치료효과를 판가름했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이들이 도달한 결론은 대체의학의 효과는 그저 플라시보 효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선 대중화된 침의 경우가 대표적. 이들은 침의 원리가 경혈을 자극해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질환을 치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경혈과 기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아직 규명되지 않은 상태임을 지적한다. 저자는 침의 효과라고 불리는 것은 침이 몸에 닿을 때 따끔하는 가벼운 통증이 플라시보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또 플라시보 효과를 차단한 ‘위약대조군 비교시험’에서 침은 몇가지 유형의 통증과 구역질에만 효과를 보일 뿐 대부분의 질환에는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이는 비슷한 원리로 활용되는 지압과 뜸, 전기침 등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장규모가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동종요법도 저자에 따르면 효과는 전무하다. 과학적으로 볼 때 동종요법은 아무 근거가 없다. 동종요법은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을 치료한다’(독으로 독을 제압한다)는 아이디어에 기반한 치료제로, 원액을 희석할수록 효과가 강력해진다는 가설에 근거한다. 이는 ‘해장술이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속설과도 통한다. 1790년 독일 의사 하네만이 개발한 이 요법은 감기에서부터 심장병에 이르는 모든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자가 밝힌 결과는 실망스럽다. 동종요법사가 흔히 사용하는 30C치료제의 경우, 치료제를 물이나 알코올에 100배로 희석하는 과정을 30회 반복해 얻은 것으로 여기에는 치료제의 분자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수백 건의 임상시험 결과, 동종요법 역시 플라세보 효과이며, 말라리아, 이질, 장티푸스 등 특정 질환에 동종요법이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는 결론이다. 여기에는 공동저자이자 동종요법사로 활동한 에른스트 교수의 증언을 더해 설득력을 높였다. ‘공들여 만든 가짜 약’일 뿐이라는 얘기다.
척추교정으로 모든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카이로프랙틱은 요통 치료의 경우에만 현대의학의 물리 치료 수준과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외의 질환에는 효과가 없을 뿐 만아니라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것. 특히 경추교정을 통해 추골동맥박리가 일어나면 뇌경색이 일어날 수 도 있음을 사례를 통해 들려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치료법인 약초요법에 대해서도 저자들은 시중에서 잘 팔리는 36가지 약초치료제를 대상으로 효과를 판정했다. ‘충분하다’, ‘판단하기 힘들다’, ‘부족하다’ 의 3등급으로 제시한 효과를 보면, 악마의 발톱은 근골격계 통증 치료제로서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충분하다’는 의미는 여러 차례 높은 수준으로 시행된 임상시험 결과가 확실한 효과가 있고 효과의 근거가 균일하다는 얘기다. 불면증과 불안 치료로 알려진 라벤더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로 나타났다. 캐모마일, 달맞이 꽃도 마찬가지다. 애키네시아는 감기를 예방하는 건 아니지만 감기 증상의 지속기간을 줄여준다. 저자는 과학적 실험을 통해 유효성분을 추출해 만든 약이 현대의학으로 편입되는 경우도 있지만 유효성과 안정성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대체의학의 범람 속에서 혼란스러운 이들에게 일단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지만 오랜 전통을 지닌 침 요법 등의 경우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