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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遺憾)의 언어학…북한에서 ‘유감’의 사전적 의미는?
뉴스종합| 2015-08-25 11:17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북한이 지난 25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과 포격전에 대해 유감(遺憾)을 표명한 가운데 ‘유감’의 의미를 놓고 이견이 분분하다.

‘유감’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차지 아니해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을 의미하는 ‘사과(謝過)’, ‘남에게 대해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러움’을 뜻하는 ‘미안(未安)’과는 사뭇 다른 개념이다. 
<사진>마라톤 협상 끝에 극적으로 공동합의문을 도출한 남북 대표단의 모습. <청와대 제공>

‘유감’에 대한 북한의 사전적 의미도 남한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립국어원 어문연구과 관계자는 “첫 번째는 ‘매우 섭섭한 것’, 두 번째는 ‘마음에 차지 않고 불만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뜻한다”며 “남한과 북한의 의미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남한에서 ‘유감’은 가볍게 쓰이는 표현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안타까움을 드러낼 때 쓰이며, 뚜렷한 사과의 뜻은 아니다. 

북한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활용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외교적 의미로 바라볼 때 유감(regret)은 보다 사과에 가까운 표현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이나 외교가에서 ‘사과(apology)’라는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사과 대신 늘 등장하는 단어가 ‘유감(regret)’이다.

시민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의 유감 표명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생 김모(26) 씨는 “아무리 북한이 유감 표현한게 드문 일이었다지만 상대방 다리를 절단시켜 놓고 사과나 책임자 문책이 아닌 유감 한 마디라니…”라며 “북한이 다시 한번 자존심까지 다 챙기고 실익을 얻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 김모(43·여) 씨는 “한반도가 전쟁에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였는데 그 때도 북한이 한게 유감 표명이 전부였다”며 “현실적으로 그 이상의 표현을 바라는 건 무리이고 더 이상 유감 표명을 갖고 왈가왈부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라고 밝혔다. 

강성윤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북한의 유감 표시가 현실적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번 협상에 대한 의미로 “무엇보다 남북관계 복원의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남북한이 나름대로 한번도 위기를 서로 결코 원치 않다는 걸 알았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외교상에서 유감이란 뜻은 사과의 뜻에 준하는 표현”이라며 “북한에게서 받을 수 있는 강도 높은 사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북한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유감 아닌 사과의 뜻을 전한 건 1972년 5월, 한 차례다. 

이마저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뤄졌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비밀리에 방북했을 때,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68년 김신조 등 31명의 무장간첩이 청와대를 기습한 사건에 대해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라고 말한 것이 전부다. 

그러면서도 김 주석은 “내(김일성) 의사나 당의 의사는 아니었다”며 직접적인 책임은 회피했다.

한편 북한의 이번 유감 표명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체제에 들어 첫 사례이며, 정전협정 이후로는 다섯번째이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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