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슈퍼리치] 핵전쟁ㆍ쓰나미도 견딘다 … 부호들의 특별한 피난처
뉴스종합| 2015-08-28 10:55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성연진ㆍ윤현종 기자]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돈이 많은 자, 적은 자를 가리지 않는다. 가진 것이 많아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오히려 불확실성과 불안에 더 견디지 못한다. 부호들이 ‘안전’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유다.

남북간 군사적 대치상황이 마라톤 협상 끝에 극적 타결에 이르게 됐지만, 북한이 군사적 도발에 나설 때마다 언급되는 곳이 있다. 국내에서 10년째 최고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서초동 트라움 하우스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08년 이 주택을 95억원에 구입했다. 이 회장 외에 강덕수 전 STX 회장과 김덕수 퍼스텍 회장, 김석규 한국 몬테소리 회장 등이 트라움하우스를 소유하고 있어 ‘회장님의 집’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러나 이 집이 시선을 모은 것은 값비싸서, 회장님들이 많이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바로 건물 밑에 위치한 ‘지하 벙커’ 때문이다. 두께 70㎝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쌓인 벙커는 핵무기와 진도7의 강진에도 끄떡없이 200명이 2개월 이상 생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전기 공급 중단 사태를 대비해 수동 발전기가 있고, 벽체 곳곳에는 방사능 오염물질과 핵먼지 등을 걸러내는 필터와 공기순환기가 설치돼있다. 1945년 일본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15kt(킬로톤ㆍTNT 1000t의 폭발력)이상의 위력을 견딜 수 있다는 분석이다. 2003년 분양 당시, ‘휴전국’인 한국에서도 주택에 핵 전쟁에 대비한 벙커를 설치한 것은 트라움 하우스가 처음이었다. 공시가격만 60억원이 넘는 비싼 집이지만, 천재지변이나 군사정변 때 몸을 지킬 수 있다면 거부들에게는 그리 큰 돈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슈퍼리치들을 위한 대피소는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는 영화속에서나 나옴직한 슈퍼리치들의 대피소들이 많다.

아예 억만장자를 대상으로 한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꿈꾸는 시설도 있다. 캘리포니아 기반 대피소개발업체 비보스(Vivos)는 지난 6월 재앙대비 지하 벙커인 ‘유로파원(Europa One)’ 분양을 시작했다. 독일 로데스타인에 위치한 ‘유로파원’은 냉전 시대에 소련이 군수품 저장 용도로 제작됐다. 통일 이후 독일정부가 경매에 내놨고, 비보스 그룹 창업자인 로버트 비치노(Robert Vicino)가 낙찰받아 은밀한 지하 벙커로 재탄생시켰다.

약 30만70 00㎡ 규모의 이 시설은 핵폭발, 비행기 추락, 생화학 무기, 심지어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5㎞ 가량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그 사이 방사능차단문 3개도 넘어야 한다.

시멘트 터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자체 수원과 발전기, 정화시설을 갖춰 깨끗한 물과 공기, 전기 등이 제공되고 창고에 저장된 음식 외 채소 재배나 가축 기르기가 가능해 외부 도움 없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비치노 창업자는 세계 억만장자들에게 초대장을 보내 회원권을 판매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회원들은 가족 단위로 70평 가량 공간을 할당받으며, 분양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로파원’의 현재 가치는 약 10억 유로(1조3000억원)가량이다.

온갖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안전한 세계를 꿈꾸는 부호들의 바람은 벙커에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마이애미에는 아예 부호들만의 섬이 있다. 인디언 크릭 아일랜드(Indian Creek Island)로 불리는 이 섬은 올 4월 미국 부동산 정보사이트 질로우(Zillow) 집계 기준 미국에서 가장 비싼 주거지로 선정됐다. 집 한 채의 중간 가격대는 2148만달러이다.

이 섬의 특징은 ‘보안’이다. 얼핏 보면 마이애미의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플로리다 반도를 향해 불어오는 해풍을 만낄 할 수 있는 휴향직 같아 보이지만 이면에는 강력한 안전 보장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주민들이 고용한 사설무장경찰 15명은 지프ㆍ보트ㆍ제트스키 등을 이용해 섬 안팎을 24시간 경비한다. 뭍으로 나가는 통로도 다리 하나뿐이다. 포브스가 이곳을 두고 ‘요새(Fortress)’라고 표현한 이유다.

이 요새같은 섬의 면적은 1.1㎢(주거지 및 기타면적 포함) 정도로 서울 여의도(8.4㎢)의 약 7분의 1 규모다. 그러나 단 86명(2010년 인구조사 기준), 35가구가 살고 있다. 현재 알려진 주민으론 헤지펀드 업체인 ELS인베스트먼트의 에드워드 램퍼트 창업자(자산29억 달러)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칼리드 빈 알 사우드 왕자(자산 18억 달러)등 몇몇 뿐이다. 이 섬의 가장 비싼 저택(4700만 달러)의주인으로 알려진 러시아 부호를 비롯해 대개의 집주인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은 수천만 달러의 집값을 현금으로 계산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 부호들은 이 같은 ‘안전 확보’에 더욱 예민하다. 일본 언론은 동아시아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에이벡스(AVEX)의 마츠우라 마사토(松浦勝人) 사장이 집 지하에 상당한 수준의 재난 대피용 시설을 구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대피 시설의 목적은 지진 등의 재난을 대비한 시설이라는 설명이다.

일본 최고 거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도쿄도 내에 무려 80억엔을 들여 지하 2층, 지상 4층짜리 대주택 건설에 나섰다. 이미 일본과 미국에 저택을 가진 손 회장이 새집 짓기에 나선 것은 지하에 대규모 대피시설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러시아의 부호이자 영국 프리미어 리그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자산 90억 달러)는 아예 자신만의 이동 요새를 갖췄다. 그의 전용기와 호화 요트에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갖췄다. 그가 장착한 시스템은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버금가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러시아의 재계에서 사실상 축출된 경험이 있는 아브라모비치다. 다른 어떤 위험보다 고국의 정부와 군대를 믿지 못하는 그다. 유사시에는 바다위에서라도 생존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부호들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이른바 ‘대피소 제작’ 시장도 규모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영국의 한 일간지는 지난해 런던의 고급 주택가인 켄싱턴 등에 ‘세이프룸(safe room)’ 만들기가 유행이라고 보도했다. 생화학 무기와 핵폭탄으로부터 안전한 콘크리트 및 방탄용 금속 패널의 벽과 외부 침입자를 한 눈에 감시할 수 있는 CCTV모니터, 그리고 경찰과 핫라인으로 연결될 수 있는 네트워크 및 위성 전화. 오염된 공기를 정화할 수 있는 공기청정 장치를 갖춘 ‘안전한 방’을 만드는 비용은 200만 유로에 달한다.

일본에선 이동형 벙커를 개발한 이가 수천억원을 끌어모았다. 일본 ‘키미도리 건축(キミドリ建築)’ 온다 히사요시(恩田久義) 회장은2011년 쓰나미를 보고 어떤 재난과 재해에도 견딜 수 있는 이동형 벙커 개발을 결심했다. 그가 개발한 ‘바리아(Baria)’는 강화플라스틱 소재로 표면을 오각형 다면 구조로 구성해, 내부 충격을 완화시킨다. 홍수와 해일 때는 물에 뜰 수 있다. 또 폭격이나 미사일 충격도 견딜 수 있다.

온다 회장의 ‘바리아’는 중형이 약 1050만 엔(약 9500만원), 대형은 약 1억5000만 엔(약 13억6000만원)을 육박한다. 온다 회장은 2011년 제품 출시후 2014년까지 연 200억 엔 상당의 소득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yjsung@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