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
영화 3편 동시상영중…충무로서 ‘콕’집은 배우 배성우
엔터테인먼트| 2015-09-03 11:21
‘베테랑’ ‘뷰티인사이드’ ‘오피스’출연
배역·비중 불문 미친 존재감 눈길
“연기 좋더라,그한마디 가장 행복”



분량보다는 존재감으로 승부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다작 배우 이경영은 ‘충무로 영화는 이경영이 나온 영화와 안 나온 영화로 나뉜다’는 농담인 듯 농담 아닌 설(說)을 만들어냈다. 전 연령층에서 폭넓은 사랑을 받는 감초 배우 오달수는, 지난 해 ‘1억 배우’에 이어 올해는 ‘쌍천만 배우’ 타이틀을 거머쥐며 ‘흥행 요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신흥 충무로 ‘대세’로 꼽히는 배우는 단연 배성우(43)다. 지금 극장가에선 배성우가 출연한 영화 3편이 나란히 걸린 진풍경을 만날 수 있다. ‘베테랑’, ‘뷰티 인사이드’, ‘오피스’가 2주 간격으로 개봉한 결과다. 1관에선 중고차 매매 사기꾼(베테랑)으로 분한 배성우를, 2관에선 교복 입은 모습(뷰티 인사이드)의 배성우를 만날 수 있다. 배역과 비중을 불문하고 그는 어김없이 관객들을 숨죽이게도 하고 웃음이 터지게도 한다.

그럼에도 감질나는 출연 분량이 아쉽다면, 새 영화 ‘오피스’(감독 홍원찬ㆍ제작 영화사 꽃)에서 그의 진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선량하고 성실한 가장인 김병국 과장(배성우 분)이 어느 날 자신의 일가족을 죽이는 엽기적인 사건을 저지른다. 이 끔찍한 비극의 주체가 단순 사이코패스로 설명할 수 없는 입체감을 가지는 건, 오롯이 배성우라는 연기자의 힘이다. 어수룩한 듯 애잔해 보이는 얼굴에서 웃음기만 살짝 걷어내도 금세 다른 사람이 된다.

“회사원이 아니더라도 이 사회와 시대가 불안하고 힘들다는 걸 모두가 느끼잖아요. 게다가 김 과장은 조직에 속해 있고,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기도 하죠. 일을 해서 먹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과 아픔, 슬픔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어요. 다만,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일으켜야 하니까, 연기할 때 복잡한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는 부분이 까다로웠죠.”


영화의 제목인 ‘오피스’라는 공간은 뿌린만큼 거두고 일한 만큼 인정받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배반하는 곳이다. 김 과장은 정글같은 조직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방황한다. 한결같이 성실한 태도로 제 몫을 해내지만, 그를 바라보는 상사와 동료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눈치나 요령, 야망이라곤 모르는 듯 보이는 김 과장은 그들 눈에 무능력한 존재일 뿐이다.

사실 배성우가 발 딛고 있는 대중예술을 하는 업계도, 척박한 빌딩 숲과 다를 바 없는 곳이다. ‘배우’라는 조금은 특별한 직업을 가진 이들 중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며 안정적으로 먹고사는 배우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얼굴 없는’ 배우들은 생계 걱정을 내내 달고 살아야 한다. 연기를 해서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연기를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기도 한다. 배성우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지난 날이 있었지만, 숱하게 상처 입으며 생긴 ‘굳은살’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배우들은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먹고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늘 있을 수 밖에 없어요. 저도 남들 한두 달치 월급을 연봉으로 받기도 했어요. 최소 100~200명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대에서 5명을 앉혀놓고 연기한 적도 있어요. 상처 안받은 척 ‘으쌰으쌰’하고 무대에 올랐지만 쉽지 않았죠. 시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어디론가 숨고만 싶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정신연령이 낮은 편이라(웃음)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고, 금세 ‘내일 공연은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편이었어요.”

배성우는 몇 년 전부터 주 활동무대를 영화로 옮겼다. 최근 3년여간, 배성우는 스크린을 누비고 있다. 뒤늦게 발 디딘 영화 현장에서 그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한 팀이라는 유대감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큰 즐거움을 느꼈다. 최근 비중있는 역할을 맡으면서 보다 입체적인 연기가 가능해진 점도 그를 영화연기의 매력에 빠지게 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작품이 들어오는대로 가리지 않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보면 한 작품에 쏟을 수 있는 집중력이 분산될 수 밖에 없다. 배성우는 작품에서 좀 더 의미 있고, 보여줄 것이 많은 역할을 위해 작품 편 수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너무 세거나 웃기거나 튀는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그보다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하는 캐릭터에 끌리고 연기할 때도 재미를 느껴요. 그리고 작품에서 제 연기가 맛깔스럽게 나왔을 때, 누군가가 제 연기를 보고 ‘좋더라’고 해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연기라는 게 궁극적으로 배우와 관객의 ‘소통’이잖아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전했을 때 상대방이 그걸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즐거운 거죠. 기본적으로 연기하는 게 즐겁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못하지 않았을까요?”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