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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일간의 세계여행] 53. 18시간 햇빛이…남미의 땅끝마을에선 하루가 길다
라이프| 2015-09-09 10:25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남미 대륙의 최남단이라는 우수아이아로 떠난다. 버스로 이동하면 60시간이 걸린다는 길이라 비행기로 간다. 버스만큼이나 항공이동이 많은 남미라서 걱정은 없다. 세 시간이 걸려 우수아이아에 도착한다. 비용은 더 드는 만큼 시간을 단축해 주는 쾌적한 이동이다. 남미에 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기에 와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욕심내고 있다. 남극에서 1000km 떨어진 곳이라니 남극에서 실려 오는 차가운 바닷물이라도 만져 볼 수 있지 않을까? 


남위 38도 이상의 고원 지역 파타고니아를 날아 남위 55도라는 우수아이아로 간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남부 지역인 파타고니아지대는 인구도 희박한 고원 지대로 빙하지형도 많다. 추운 날씨에 녹지 않는 눈들을 이고 있는 산봉우리들이 연속이다. 무료한 여행자가 비행기에서 바라보기엔 멋진 풍광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차가운 바람이 온 몸을 휘감는다. 세찬 바람이 깃발을 이리저리 펄럭이게 한다. 북으로는 만년설이 있는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남쪽으로는 바다를 안고 있는 소도시 풍경은 아름답다.


면세지역이라 고가의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이 즐비하고 스키장비나 와인샵, 레스토랑과 기념품가게가 예쁜 거리에 단장되어 있다. 계절은 여름이라 지금이 최고기온이라는데 영상10도 정도, 바람이 심하니 체감온도는 떨어져 더 춥게 느껴진다. 한 여름에 맛보는 건조한 추위가 쌉쌀하다. 춥고 건조하고 바람 많고 오기도 힘든 우수아이아에 오는 사람들은 여기가 “대륙의 끝”이라는 상징을 찾아온다. 최남단 등대 투어나 비글해협의 바다사자, 펭귄 투어도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여기서 “끝”을 음미하려고 오는 것이다.


도착해서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벌써 오후다. 한 바퀴 돌아보려고 나선 거리에서, 펭귄 투어를 하고 싶다는 동행들은 투어 먼저 예약한다. 난 여기서 투어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우수아이아라는 도시 여기저기를 천천히 다녀볼 생각이다. 별 일이 없다면 창이 큰 까페에서 커피를 마셔도 좋을 것이다. 남미에 오고 나서는 하루도 허투루 보내기 싫어서 휘몰아치듯 다녔다. 내일은 일정을 계획하는 대신 발걸음 닿는 곳으로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던 여태까지의 남미 여행과는 달리 여기서는 별것 찾아다니지 않고 발길 가는대로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국내선 비행기에서 나눠준 간식만 먹고 온 터라 배가 고프다. 혼자면 못먹겠지만 동행들과 함께 유명하다는 킹크랩을 먹어보기로 한다. 킹크랩만을 파는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킬로당으로 가격을 매기니 직접 수조에서 골라야한다. 서빙해주는 예쁜 웨이트리스는 나른한 얼굴로 커다란 킹크랩을 보여준다. 여행자들은 그 크기에 압도되어 재미있어 하는데 웨이트리스는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서있다. 처음 고른 킹크랩은 너무 커서 작은 놈으로 한 마리 주문해서 먹는다. 웃음기 없는 서빙은 별로지만 세상의 끝에서 맛보는 킹크랩은 말 그대로 끝내준다. 


그냥 숙소로 가기도 뭣해서 산책을 하다가 기어이 멀리 있는 “수퍼 메르까도(SuperMercado)”를 발견한다. 대형 수퍼마켓 말이다. 우수아이아의 여름 해는 길어서 이따 게스트하우스의 주방에서 뭐라도 만들어 먹으려고 장을 봐서 숙소로 간다. 예상이 맞은 게, 오후 8시,9시에도 파란 하늘이 그대로더니 10시 반쯤 해가 진다. 메르까도에서 산 초리소와 새우를 적당히 요리해서 와인과 함께 마신다. 넓은 주방은 여행자들로 붐빈다. 국제적인 관광지라 물가가 무척 비싼 우수아이아의 레스토랑보다 숙소 주방에서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은 주로 배낭여행자들이다.

옆자리에서 음식을 먹던 칠레에서 여행 왔다는 대학생과 사업한다는 아르헨티나인이 말을 건다. 전공을 사진에서 영화로 바꿨다는 칠레 대학생은 한국영화광이다. ‘올드보이’ 등의 한국영화를 한국 사람보다 더 잘 안다. 박찬욱 감독은 천재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게다가 감명 깊게 봤다며 문소리라는 여배우가 주인공인 영화의 이름을 묻는다. 다들 와인까지 마시는 중이어서인지 시끌벅적한 그 분위기 때문인지 가물가물 생각이 날듯 말듯 하다가 드디어 제목이 떠오른다. “오아시스!” 답을 찾았으니 모두들 즐거워진다.


이번엔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주방을 뒤져 마테(Mate)잔을 꺼내온 그들이 마테 마시는 법을 알려준다. 찻잎을 많이 넣고 물을 붓고 금속 빨대인 ‘봄빌라(Bombilla)’를 꽂아 잠시 우려낸 후 마시면 된다. 여기까지는 녹차와 다를 바 없지만 마테는 특유의 마시는 방법이 있다. 먼저 주인이 봄빌라의 빨대에 입을 대고 마신 후, 다시 뜨거운 물을 따라 차를 우려내어 다음 사람에게 잔을 넘겨주면 그도 닷 그 빨대에 입을 대고 마신다. 여기 있던 다섯 명이 다 그렇게 마테차를 마셨다. 하나의 봄빌라를 여럿이 사용하는 게 비위생적으로 보이지만 아르헨티나의 문화이니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왁자지껄 웃고 떠들다보니 그리 오래 하늘을 맴돌던 태양도 사라지고 우수아이아의 짧은 밤이 찾아온다. 열시 반에 해가 졌는데 새벽 다섯 시면 해가 다시 떠오른다고 한다. 짧은 잠이라도 자두려고 방으로 올라간다. 이런 게 바로 긴 하루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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