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쇼는 없었다. 전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은 9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이폰 6S와 아이패드 프로, 애플 TV 등의 신제품을 발표했지만 월스트리트 저널의 예상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날 주가 하락세를 막지는 못했다. 뉴욕증시에서 장 초반 상승하던 애플 주가는 1.92% 하락세로 마감했다. ‘깜짝 뉴스’가 없었다는 말이다. USA투데이는 “놀랄 일은 없었다. 사전에 떠돌던 소문은 대부분 맞았다. 스티브 잡스 시대에는 없었던 일”이라고 평했다.
애플 CEO 팀쿡이 9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신제품 공개행사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
아이폰이 첫 출시된 2008년 이후 애플은 시장의 일반화된 게임 규칙을 깨며 승승장구했다. ‘애플의 마법’이라 불렸다. 하지만 이 마법도 시효를 다해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애플의 발표회 직후 “8년 동안 계속 애플의 아이폰은 여전이 룰을 깨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처음 소개된 지 8년 동안아이폰은 지구 최대의 게임에서 승리자가 돼 왔다, 승리는 계속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오히려 이 반응이야말로 애플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업계와 투자시장에 드리워진 지배적인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애플 CEO 팀쿡이 9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신제품 공개행사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
뉴욕타임스는 “아이폰이 앞으로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사실상 모든 수익을 쓸어버릴 수 있을까, 애플이 압도적인 선도를 계속할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애플의 마법이 얼마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피어오르고 있다”고 했다.
‘애플의 마법’으로는 몇 가지가 꼽힌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북 등 지극히 단순화된 고급 소품종에 집중하며 경쟁사나 시장의 동향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가 정책을 펴왔다. 제품과 기술의 표준도 무시하고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을 고집해왔다. 새로운 제품의 타깃을 우선적으로 기존 애플 제품 소비자로 설정하며 일종의 ‘팬덤’을 형성했다.
하지만,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왔던 ‘마법’이 약점이자 자신을 향한 칼날이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일단 소품종에 집중해왔던 결과는 지나친 아이폰 의존도로 나타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의 아이폰 의존도는 올해 최고에 달해 회사 전체 매출의 68%, 출하량의 75.1%에 이르렀다.
고가의 가격정책도 미국 이동통신사들의 약정 및 보조금제 폐지와 전세계 시장에서의 중저가폰 열풍 등으로 인해 아이폰판매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및 플랫폼 정책도 최근 호환성과 범용성을 강화한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10 등의 공세를 방어해야 하는 입장에 섰다.
지난해말과 올해까지 애플에 사상 최대의 매출과 이익을 가져다줬던 ‘중국 특수’도 올해는 불투명하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둔화와 중국 경제 부진, 위안화 가치 등도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애플에는 위험요소다.
미국 투자은행 파이퍼 재프리의 애널리스트 진 문스터는 기능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아이폰6S와 아이폰6S의 판매 증가율은 전작 대비 4%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이폰의 판매성장률이 2016년 4분기를 기점으로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처럼 전에 없던 혁신적 제품을 내놓지 않으면 애플의 마법도 마감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애플이 아이폰의 고가정책을 유지하며 고수익을 뽑아낼 수 있는 이유가 기술과 서비스를 최적화시키는 능력에도 있지만, 아시아를 비롯한 전세계 소비자들의 ‘과시욕’에 있다고 봤다. 고가의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른 이들과 차별화한다는 이른바 ‘베블렌 효과’다. 베블렌 효과가 과연 애플 마법의 시효를 연장시킬 수 있을까.
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