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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매매 역전시대]세입자 감당못할 ‘전세 버블’…‘렌트 푸어’ 경고음
부동산| 2015-09-23 09:43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지난달 29일 서울 성동구 금호동1가 벽산 아파트 84㎡(이하 전용면적)는 4억3500만원(2층)에 팔렸다. 전달 4억2700만원(2층)에 거래됐고, 로열층으로 꼽히는 17층도 4억3000만원에 매매됐기 때문에 그다지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다. 그런데 8월 이 아파트 전세는 4억3000만원(15층)의 보증금을 받고 임차 계약을 맺었다. 4억원 전후로 계약되던 것이 전세물건이 사라지면서 갑자기 시세가 뛰어 매매가격보다 비싸게 계약됐다. 인근 스피드뱅크정보공인 관계자는 “이달 들어서도 5층 같은 크기가 4억3000만원에 계약됐다”며 “전세는 물건이 없으니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전셋값이 매매가격을 뛰어넘는 ‘전세 가격의 매매가격 역전현상’이 수도권에 확산되고 있다.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80% 이상으로 높은 지역엔 이런 현상이 쉽게 목격된다. 집주인이 급매물로 아파트를 팔면 전세가격과 비슷해지거나 오히려 싸게 매매되는 것이다.

전셋값이 매매가격을 뛰어넘는 ‘전세 가격의 매매가격 역전현상’이 수도권에 확산되면서 전세 버블 논란을 낳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부동산 가격을 볼 수 있는 중개업소 앞 전경.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23일 정부 공인 부동산 시세 작성기관인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전세는 월간 기준 2012년 9월 이후 지난 8월까지 36개월간 쉬지 않고 올랐다. 3년간 25.21%나 상승했다. 수도권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이 2억5500만원 수준이므로 평균 6400만원 정도씩 뛴 셈이다.

같은 시기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4.06% 오른데 그쳤다. 매매가격 상승폭은 물가 상승률 수준에도 못 미치는 데 전세가격은 고공행진을 하니 전세가율은 급등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율은 3년 전 58.4%에서 지난달 기준 72.1%까지 13.7%p나 뛰었다.

단기간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전세가격도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며 ‘전세버블’ 논란이 본격화하고 있다. 투자목적이 아닌 실수요자에 의해 거래되는 전세지만 ‘전세대출’ 등을 활용해 세입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비정상적으로 전셋값이 뛰었다는 의미에서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정부의 지원으로 전세자금 대출이 활성화되면서 무리한 전세자금 대출이 많았다”며 “세입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전세가격이 뛰었다는 의미에서 ‘전세버블’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국토부 ‘201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내 준 전세보증금 총액은 301조원이며, 이중 수도권에만 236조원의 전세보증금이 묶여 있다. 이중 33조원이 대출을 통해 조달됐는데, 최근 각종 전세 대출 활성화 정책으로 더 급등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문도 임대주택연구소장은 “100만가구 이상의 ‘하우스푸어’(과도한 대출로 집을 사 생활이 어려운 주택보유자)가 최근 몇 년간 전셋값이 올라 이를 통해 대출을 갚아 이자 부담을 줄였다”며 “하우스푸어 부담을 결국 렌트푸어(과도한 전세자금 대출로 생활이 어려운 계층)가 나눠진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재국 서일대 교수는 “만약 집값이 하락한다면 하우스푸어뿐만 아니라 렌트푸어까지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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