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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취업이나 결혼, 2세 출산 등 인생의 ‘중대사’를 아직 이루지 못한 이들에게 명절은 오히려 고통의 시간에 가깝다.
관심을 빙자해 친지들이 던지는 한마디는 자신들에게 붙은 미취업자, 미혼자, 미자녀부부라는 꼬리표를 더 부각시키는 것만 같아 아예 발길을 끊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명절 때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면 고독감은 보통 때보다 더 심해져 자신은 이 세상에서 미(未)생일 뿐이란 생각에 시달리게 된다.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3년째 취직준비를 하고 있는 김모(32) 씨는 작년부터 설 때만 하루 고향에 내려갔다 오고 추석 땐 서울 자취방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씨는 “어차피 명절엔 공부도 잘 안되고 그래서 이번 추석 연휴 땐 일당 10만원 정도 벌 수 있는 알바를 하고 있다”며 “하반기 공채가 코앞인데 올해는 꼭 붙어서 부모님께 사원증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솔로족들에게도 명절은 기피하고 싶은 시간이다. 30대 중후반 이상의 미혼자 중에선 명절 때 아예 두문불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일하는 김모(38·여) 씨는 “일부러 안하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빨리 가라는 식으로 말할 때 속이 상한다”며 “조카들을 보지 못해서 속이 상하지만 명절 땐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드리는 걸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와 직장인 1786명을 대상으로 추석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을 조사한 결과 구직자의 경우 1위는 ‘아직도 취업 못했니’(17.1%)라는 말이었다. 직장인 1위는 ‘사귀는 사람은 있니, 결혼은 언제하려고’(28.3%)라는 질문이었다.
난임 등의 문제로 결혼 후 아직 자녀를 갖지 못한 부부들에게도 명절은 두려운 시간이다.
서울 모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김모(36·여) 씨는 결혼 3년차다. 남편과의 교제 기간이 짧아 신혼을 연애처럼 보내려고 애를 빨리 갖지 않았다.
그런데 한두해가 지나자 시댁 어른들로부터 ‘나이도 적지 않은데 왜 아이를 갖지 않느냐’, ‘몸이 허약해서 그런거 아니냐’ 등의 얘기를 듣게 됐고 이 말들은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래서 올해는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막상 임신이 잘 되지 않았다. 추석이 다가올수록 압박감은 더 심해졌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남편도 건강한 편이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데 왜 (임신이) 안되는지 모르겠다”며 “임신에 좋다는 약을 지어먹을까 생각 중이고 정 안되면 불임클리닉이라도 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명절 스트레스를 피해 아예 해외 여행을 떠난 미자녀 부부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양가에 ‘허니문 베이비 만들러 간다’, ‘애 없을 때 즐기고 싶다’ 등의 이유를 대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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