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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野史] 이합집산의 여권史…더 단단해졌다
헤럴드경제| 2015-09-27 10:20
야권 분열상에 묻힌(?) 꼴이 됐지만 한때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보수 신당설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였다.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계의 아슬아슬한 동거 속에서 신당이 탄생하진 않을까, 세간의 관심은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비록 현재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으나 계파 갈등은 여당 분열의 단골 메뉴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은 1990년 당시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 야당인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탄생했다<사진>. 3당이 함께 한 만큼 분열의 여지도 컸다. 


민정계 이종찬 전 의원과 공화계 김종필 전 총리는 각각 새한국당과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며 차례로 이탈했다. 92년 대선 경선에서 분열한 새한국당은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새한국당은 정주영 후보가 이끌던 국민당과 합종연횡을 꾀하다 실패하고 1995년 민주당과 합당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반면 97년 대선에서 DJP 연합을 이룬 자민련은 지각변동의 축이 됐다. 게다가 이인제 의원은 신한국당의 대선 경선 결과에 불복해 국민신당을 창당하며 정권교체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97년 대선은 ‘분열은 곧 패배’라는 뼈 아픈 경험을 여권의 역사에도 새겼다.

‘친박연대’는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공천과정에서 탈락한 친박계가 이탈해 만든 정당이다. 특정인을 당명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정당사에 드문 사례로 기록된다. 이들은 또 애초에 ‘한나라당 복당’을 목표로 설정했다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이후 한나라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친박연대ㆍ선진통일당과 합당을 마무리하며 한국 유일의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처럼 여권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도 단일 보수당으로서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97년 대선 패배의 경험을 제외하곤 분열의 강도가 여권에 비해 약했다는 것 또한 주요 특징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여권이 쉽게 당을 깨진 않는 것을 대통령 중심제의 특징으로 설명했다. 윤 교수는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 대통령은 당의 공식직함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실권자로서 장악력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50%에 육박하는 지지도를 바탕으로 여권 분열을 막는 강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윤 교수는 이어 “여당의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바람 부는 황야에 서게 되는 것”이라며 “집권여당에 속할 때와 테두리 바깥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비교했다. 즉 여당에 주어진 실질적 권한이 야당에 비해 월등하며 이것이 여권 분열을 막는 현실적 이유라고 그는 지적했다.

보수 신당론에 대해 윤 교수는 “여권 내에서 갈등을 겪는다 해도 여권 안에 머무르며 기회를 보는 게 정치적으로 이익”이라며 “여권 분열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제로(0)에 가깝다”고 했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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