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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이유로 수혈 거부’ 환자 사망했다면…누구 책임?
뉴스종합| 2015-10-12 12:51
- 대법원은 의사 무죄 판결…‘의사 생명보호 의무 vs. 환자 자기결정권’ 논란 팽팽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여호와의 증인’ 환자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수혈을 거부하다 수술 도중 숨졌다면 의사와 환자 중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최종 판결에서는 의사에게 무죄가 선고됐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법조계와 학계 의견은 팽팽하다. 

[사진=게티이미지]

판례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따라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명시한 반면, 일부 학자들은 의료진의 생명보호 의무를 경시한 의사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대법원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수혈을 거부한 환자에게 혈액을 공급하지 않은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된 의사 이모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씨는 2007년 12월 모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환자 A(여ㆍ당시 62세)씨에 대해 제 때에 수혈을 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A씨는 우측 고관절을 인공고관절로 바꾸는 수술을 받던 중 혈관 파열로 인한 과다 출혈이 발생하자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A씨는 사망 한 달 전까지 다른 병원을 돌며 무수혈 수술을 요구했다가 모두 거부당했다. 결국 이씨가 근무하는 병원을 찾아 ‘수혈을 원치 않고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바 있다.

1ㆍ2심 재판부는 “환자가 수술 전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받지 않을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충분한 의학적 정보를 제공받고,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수혈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면 이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며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생명의 존엄성과 종교적 신념을 둘러싼 논란은 서양에서도 큰 관심거리다.

‘속죄’로 유명한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67)이 최근 발간한 소설 ‘칠드런 액트(한겨레출판사)’는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17세 소년 애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신실한 신도인 부모와 애덤은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지만 병원은 수혈을 강제로 집행하기 위한 강제 명령을 법원에 신청한다. 이 과정에서 아동 복지법(법원이 미성년자 관련 사건을 판결할 때 아동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원칙) 등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게 된다.

현재 영국은 본인 치료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 개인의 기본권으로 보고 의사가 환자의 의사에 반해 치료하는 행위는 형법상 폭행죄로 분류하고 있다.

박기석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논문을 통해 “형법이 의료행위에 지나치게 간섭해서도 안되지만, 비상식적인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의사가 무모하게 따르는 것을 무조건 방치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사람의 생명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달리 대체할 수 없는 반면, 종교적 신념을 비롯한 자기결정권은 주관적이고 시기와 장소에 따라 변할 수 있다”며 “생명과 자기결정권을 동등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논리비약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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