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국보급 훈민정음’ 꽁꽁 숨겨놓고, “1000억 주면 줄께”…정부 난감
뉴스종합| 2015-10-13 08:24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국보급 문화재인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실제 소유자도 아니면서 훈민정음 상주본을 꽁꽁 숨겨놓고, “1000억원을 주면 내주겠다”는 고서수집가 때문에 문화재청이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실소유주인 문화재청은 검찰과 법원을 통해 압수 수색과 강제집행에 나섰지만, 이 골동품업자가 숨겨놓은 훈민정음 상주본을 찾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훈민정음 상주본의 존재는 고서수집가인 배모씨가 집수리를 하다 발견했다며 제보를 했고, 2008년 7월 관련 내용이 방송을 타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감정에 참여한 문화재 전문가들은 국보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간송본(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본)과 동급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간송본과 같은 판본으로 경북 상주에서 발견돼 ‘상주본’으로 명명됐다.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없어졌지만, 상태는 더 좋다. 

간송본에 없는 표기, 소리 등에 대한 연구자의 주석이 있어 학술적 가치도 더 높다.


방송이 나간 후 골동품업자 조모씨는 자신의 가게에서 배씨가 다른 고서적을 사면서 상주본을 몰래 끼워넣어 훔쳐갔다고 주장하면서 법정 다툼이 시작됐다.

조씨가 배씨를 상대로 낸 물품인도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배씨가 고서적을 구매하면서 상주본을 몰래 끼워넣는 방법으로 조씨로부터 훔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서에 조예가 깊은 배씨가 상주본의 진가를 모른 채 몇 년간 보관하다 뒤늦게 이를 발견했을 리 없고, 진정한 소유자라면 취득경위를 함구하고 낱장으로 분리해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문화재 지정을 요청하다 갑자기 태도를 바꿔 보관처를 숨길 이유가 없다는 추론에서다.


1심 재판부는 “배씨가 소유권자인 조씨에게 상주본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2심과 대법원도 이런 결론이 정당하다고 했다.

민사소송 결과 소유권은 배씨에게서 조씨에게로 귀속된다. 하지만 배씨는 조씨에게 훈민정부 상주본을 끝내 돌려주지 않았다. 

조씨는 숨지기 전인 2012년 5월 상주본을 문화재청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민사상 소유권은 문화재청으로 넘어왔다. 

배씨는 역시 문화재청에도 훈민정음 상주본을 반환하지 않고, “상주본을 자신만 아는 장소에 숨겨놓았다면서 1000억원을 주면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난감해진 문화재청은 강제집행에 나섰지만, 배씨가 숨겨놓은 장소를 알려주지 않아 허탕을 치고 말았다.

법조계는 문화재청이 상주본을 넘겨받으려면 배씨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화재청이 민사상 소유주인만큼 법원을 통해 강제집행 절차를 진행할수도 있고, 배씨를 상대로 물품인도를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누가 몰라서 못하냐“는 입장이다. 배씨가 숨겨놓은 장소에 대해 함구로 일관하고 있는데, 찾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1000억원을 주면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배 씨, 실소유권자도 아닌 배 씨를 상대로 소송해봤자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지만 강건너 불구경만 할수도 없는 문화재청간 핑퐁게임은 계속될 전망이다.

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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