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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의 무비 for U] ‘진짜’ 어른을 갈구하는 이들의 판타지, ‘인턴’
엔터테인먼트| 2015-10-15 09:00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70세 인턴이 내 비서로 온다면?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지 모른다. 뭘 시키기도 부담스러울 뿐더러, 거꾸로 비서의 눈치를 보는 상황도 그려진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한국사회라면 그 부담감이 배가 될 것이다. 아예 뽑지도 않겠지만…. 이 당혹스러운 상황을 영화 ‘인턴’(감독 낸시 마이어스)은 유쾌하고 따뜻한 코미디로 풀어낸다.

대형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줄스(앤 헤서웨이 분)는 시니어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70세 인턴 벤(로버트 드 니로 분)과 일하게 된다. 벤에게 주어진 일은 줄스를 지근거리에서 돕는 비서 업무.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줄스는 친절하고 사교적인 벤의 ‘오지랖’이 부담스럽다. 그러던 중 줄스는 회사를 전문 경영인에게 넘길 것을 종용받는 상황에 놓인다. 설상가상 전업주부로 지내는 남편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 과정에서 줄스는 사려깊은 벤에게 마음을 열고 의지하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인턴’은 판타지 영화다. 치열한 생존 경쟁의 장(場)인 사무실이 배경이지만, ‘미생’들의 판타지를 반영한 설정으로 가득하다. 노인 인턴이 회사에서 중요 업무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사회에선 판타지다. 노인 인턴십 프로그램이야 있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실제 고용 건수나 지속율도 미미하다. 70세 인턴과 허물없이 지내는 조직문화도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벤 역시 한국사회에선 판타지에 가까운 인물. 누구나 나이를 먹으며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자신의 연륜에 비춰보면 젊은 치기를 이해하기 어렵고, 결국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러다보면 조직에서 사랑받는 동료, 존경을 받는 멘토가 되긴 쉽지 않다.

비록 허구의 세계에 있을 법한 인물이라도, 벤은 어떻게든 찾아서 옆에 두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물론 로버트 드 니로의 존재감 덕도 있다). 줄스 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직장생활부터 가족 문제, 연애 상담까지 가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벤은 누군가를 가르치려드는 법이 없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백하게 전할 뿐이다. 회사를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문제로 줄스가 고민할 때도, 섣부른 조언 대신 그 곁을 묵묵히 지킨다. 속으로는 수 천 번도 더 말렸을 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녀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어떤 의견도 내비치지 않는다. 모든 후보들을 만나본 줄스가 ‘실은 내가 계속 회사를 운영하고 싶다’고 울먹이자 그제야 입을 연다. 당신이 회사를 계속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지금 이 회사를 만든 것도 당신인 걸 잊지 말라’고 격려한다. 그 순간, 누구라도 벤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질지 모른다. 앞으로 찾아올, 혹은 이미 찾아온 노년을 빛나게 할 ‘어른’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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