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리얼푸드] 천덕꾸러기 ‘은행’…구릴수록 몸엔 좋다네
뉴스종합| 2015-10-19 10:15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에휴~ 다 죽어버렸네. 다 타버렸어.”

서울 성북구에 사는 이모(71ㆍ남) 씨는 집 앞 천변에 산책 나섰다가 연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개천을 따라 쭉 늘어선 은행나무 가로수는 가을을 맞아 노랗게 물들은 듯 보였지만, 예년 이맘때의 빛깔과는 사뭇 달랐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말라 비틀어진 가지에는 몇가닥의 은행잎만이 잔뜩 오그라든 채 칙칙한 누런 빛을 흔들고 있었다. “비가 안오니까 단풍이 들기도 전에 시들어 버린 거지.” 이 씨는 그렇게 말했다.

최악의 가뭄으로 전국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은행나무들도 바싹 말라가고 있다. 수분 부족으로 엽록소가 파괴돼 시들어 버린다는, 이른바 ‘황화현상’이다. 최근 몇년 사이 가뭄이 지속되면서 가뭄에 취약한 은행나무를 가로수종으로 쓰는 일이 줄어들고 있지만, 올해는 특히 은행나무들에게 심각한 타격이 되고 있다.

은행잎만이 아니다. 황화현상은 은행 열매 역시 빨리 떨어지게 한다. 올해는 예년보다 보름 가까이 이른 지난달 중순부터 은행열매가 떨어져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였다. 구린 은행열매 냄새를 평소보다 일찍 맡게 된 시민들의 민원에 지자체의 은행열매 수거작업도 앞당겨졌다.

은행열매의 구린 냄새는 빌로볼(Bilobol)과 은행산(nkgoic acid)이라는 독성성분이 원인인데, 천적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 수단이다. 동물이나 곤충이 종자를 먹지 않게끔 스스로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냄새가 지독할수록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냄새가 독한 은행일수록 사람 몸에 이로운 영양을 많이 품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은행에는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A를 비롯해 비타민B1, B2, B6 등이 많이 들어있다. 나트륨 배출을 유도해 고혈압을 예방하는 칼륨도 100g당 578㎎이나 함유하고 있다.

은행에는 혈액순환을 도와 혈전 생성을 예방하는 ‘플라보노이드’ 성분도 많은데, 이 성분은 뛰어난 살충, 살균 효능을 보여 옛사람들은 잎을 헝겊에 싸서 집안 구석에 놔둬 해충 등이 없어지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또 은행잎을 책갈피에 끼워 두면 책에 좀이 스는 현상도 없어진다. 장코플라톤이라는 성분 역시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혈전을 없애 혈액의 노화를 막는다. 장코플라톤 성분은 LDL콜레스테롤과 기타 여러 독소를 혈관에서 제거해 질환을 예방해 준다. 이 때문에 혈액순환의 장애로 생긴 어지럼증 등에 좋은 효능을 보인다.

그러나 은행 열매에는 시안배당체(아미그달린, 부르니민)와 함께 메칠피리독신이라는 독성물질이 함유돼 있어 반드시 익혀먹고, 일일 섭취량은 성인 10알, 어린이 2~3알 이내로 섭취해야 한다. 메칠피리독신은 한번에 많은 양을 먹으면 의식을 잃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져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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