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철학, 세월호 통해 구현될까.
뉴스종합| 2015-10-20 09:03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은 살인의 행위를 한 것과 같다.”

세월호 사건 2심 재판부가 이준석 선장 등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1심보다 중형을 내리면서 밝힌 언도이다. 과거 판례에 따라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고 유기치사 혐의 등만 적용한 1심 판결을 깼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보고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아 결국 그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다면 살인죄를 저지른 것과 같다는 논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으로 불린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이 퇴선하는 모습. [TV촬영]

강도를 당해 길에 쓰러진 유대인을 보고 당시 상류층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모두 지나쳤으나 오히려 유대인과 적대 관계인 사마리아인이 구해줬다는 신약성경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타인의 위기 상황에서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는 것(부작위:不作爲)’은 근세까지 법이 아닌 도덕의 문제로 여겨져 왔지만, 지금은 많은 나라에서 구조 거부를 처벌하는 조항을 형법에 반영했다.

우리나라는 노인이나 영아, 환자 등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보호할 법률상, 계약상 의무가 있는 자가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할 경우에 한해, 매우 제한적으로, 유기치사죄를 적용하지만 구조거부죄나 살인죄를 적용해 처벌하지는 않는다.

물에 잠겨 가는 세월호.

‘무엇이 살인죄인가’에 대해 가장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는 대법원의 2006년 판례는 ‘살인의 범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 행위로 인해 타인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면 족하다’면서 ‘작위(作爲)에 의한 미필적 고의‘를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작위에 의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정신이 반영돼 있지는 않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정신이 국내 법정에서도 온전하게 구현될지 여부가 세월호 사건을 통해 판가름 난다.

이 사건 2심 재판부가 유기치사죄를 배척하고 살인죄를 적용한 취지가 대법원까지 이어지면 살인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게 된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승객 퇴선 지시가 없었다”면서 “인명 구조 조치를 결정할 수 있는 법률상ㆍ사실상 유일한 권한과 지위를 가진 이씨의 구호조치 포기와 승객 방치 및 퇴선행위(부작위)는 살인의 실행 행위(작위)와 같게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목격자 진술과 안산단원고 학생들의 침몰전 동영상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계속 나왔음이 확인됐고, 그 사이 이씨와 선원들이 탈출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대법원은 당초 이 사건을 소부(형사1부)에 배당했다가 19일 대법관 14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바꿨다.

대법원은 통상 판례를 변경하거나, 법적용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사안,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 등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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