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고승희 기자의 채널고정] ‘응답하라 1988’, 2015년이 응답했다
엔터테인먼트| 2015-11-25 07:47
김성진=‘과거는 아름답다’는 신파라도 좋다. 88년에는 분명 사람이 살고 있었다 ★★★★

고승희=가족ㆍ이웃ㆍ첫사랑이 판타지가 된 2015년의 응답 ★★★★

이혜미=옆집 숟가락 갯수까지 알았던 그 시절 정겨운 ‘오지랖’에 코끝이 찡 ★★★★

정진영=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2015년이 1988년보다 행복한가 ★★★★



이번에도 ‘응답’했다. 심지어 전 세대가 응답했다. tvN 히트상품 ‘응답하라’ 시리즈다.

‘응답하라1988’은 시작부터 순조로웠다. 10월 30일 시청지도서(3.3%)로 출발, 11월 6일 첫 회에서 6.1%(닐슨코리아ㆍ유료플랫폼 가구 기준)의 전국 시청률로 기록하는 것으로 안방에 안착했다. 시작점이 전작들보다 월등히 높다. ‘1997’과 ‘1994’의 첫 회 시청률은 각각 1.2%, 2.5%였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시청률 상승폭이 눈에 띈다. tvN에 따르면 2회에서 7.4%를 기록한 드라마는 3, 4회에선 앞자릿수를 바꿔 각각 8.4%, 8.7%를 써냈다. 5, 6회분에선 두 자릿수로 치고 나갔다. 5회가 10.8%, 6회가 10%였다. 남녀 10~50대 시청률에서도 3주 연속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응답하라 1988’은 기존 시리즈와는 다른 지점에 서있다. 1세대 아이돌(1997) 문화에 빠진 ‘고딩’들의 이야기, 대학농구 전성기 시절(1994)을 보낸 94학번의 이야기와 달리 드라마는 1988년만을 소환했다. 

시계가 한참 되돌아간 탓에 방송 전만 해도 젊은 세대의 흡수가 과제로 꼽힌 드라마다. ‘응팔’은 그러나 애초부터 가족극을 지향했다. 2013년부터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콘텐츠를 선보이며 시청폭을 넓혀가던 tvN 전략의 완성형이다. 편성시간 역시 기존과는 달리 30분 앞당긴 저녁 8시에 배치했다. KBS 주말드라마와 경쟁하는 시간대다.

드라마는 1988년으로 돌아가 이미연과 무한궤도, 88서울올림픽, 탈주범 지강헌 사건 등을 소환하지만 이전 시즌에 비한다면 대단했던 디테일은 들쑥날쑥하다.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일부 대중가요의 출생년도나 풍로를 사용하고 연탄가스에 중독되는 장면은 시간이 너무 오락가락한다는 반응이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의 음악과 소품들이 ‘향수’의 장치로 등장하는 뭉뚱그려진 1988년이다. 시리즈를 관통했던 완벽한 시대고증을 통한 대중문화계의 복고열풍이 ‘응팔’에선 축소됐다는 점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복고 대신 자리한 것은 가족의 정서다. 여기엔 ‘유사가족’의 형태도 포함된다. 제작진은 작정했다는 듯이 지상파와는 전혀 다른 가족드라마를 내놓으며 그 안에 자신들의 장기를 집어넣었다.

지상파 가족드라마가 “부모, 자식간의 금기 영역을 깨뜨리는 것으로 가족의 위기를 보여주고, 이를 화합하고 복원시키는 결말”(윤석진 드라마평론가)로 나아가거나 “과거의 유쾌하고 따뜻한 가족극에서 막장극으로 변질”(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된 것과는 다른 형태다.

‘응팔’엔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하다. 특정 세대가 아닌 가족 전체에 초점을 맞추니 자연스럽게 모두의 이야기가 담긴다. 가장의 무게, 엄마의 의미가 그려지고, 시대를 살던 대학생의 아픔을 녹인다. 가족과 이웃의 정, 첫사랑, 오랜 우정을 풀어가는 방식이 최루성 영화 못지 않다. 그 사이 사이에 ‘응답하라’ 시리즈가 꾸준히 꺼내온 ‘남편 찾기’ 추리가 등장한다. 쌍문동 골목 5인방의 우정을 그리고, 첫사랑 신화를 완성하기 위한 장치다.

드라마는 일관되게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담는다. 촌스러운 1988년 만큼이나 익숙한 신파일지라도, 1988년의 정서는 2015년이 마주하기엔 ‘외계인과의 로맨스’ 못지 않은 판타지다. 현실에선 찾아볼 수 없는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세계를 볼 때 대리만족이 오는 법이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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