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영화
[이혜미의 무비 for U] 다른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 ‘렛미인’
엔터테인먼트| 2015-11-26 00:27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10년 만에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의 흥행 열기가 뜨겁다. 웬만한 신작 외화가 거둔 성적 이상이다. 10년 전 개봉 당시의 흥행 기록(17만여 명)을 넘어선 데 이어, 개봉 4주차에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이처럼 명작의 품격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할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엔 그 가치를 더한다.

여기 또 한 편의 영화가 새 단장을 마쳤다. 원산지도 생소한 ‘메이드 인 스웨덴’ 영화 ‘렛미인’(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이다. 2008년 개봉 당시 이 낯선 스웨덴 영화가 세계 영화계에 일으킨 파장은 주목할 만 했다. 당시 영화 비평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만점인 100%의 신선도 지수를 기록했다. 세계 유수 판타지영화제에서 12개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이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할리우드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외톨이 소년 오스칼(카레 헤레브란트 분)의 옆집에 창백한 얼굴의 소녀 이엘리(리나 레안데르손 분)가 이사온다. 오스칼은 어딘가 비밀스러워 보이는 이엘리와 서서히 가까워진다. 때마침 오스칼의 동네에선 피만 뽑혀나간 시신이 잇달아 발견돼 흉흉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오스칼은 우연히 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기이한 살인 사건의 배후에 그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스칼은 이엘리와의 관계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뱀파이어’ 소재는 특별할 건 없다.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1897)를 모티브로 한 영화만 수십 편이 넘는다.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의 아름다움이 빛났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 치정에 얽힌 신부라는 파격을 시도한 ‘박쥐’(2009), 하이틴 로맨스와 만난 ‘트와일라잇’(2008~2011) 시리즈 등으로 변주되기도 했다. 이 가운데 가장 서정적인 뱀파이어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렛미인’이다. 적막한 가운데 빛나는 스웨덴의 설경, 금기의 사랑을 나누는 소년과 소녀의 아름다움이 한 몫을 한다.

‘렛미인’은 인간과 뱀파이어의 특별한 교감을 그리는 동시에, 타인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오스칼은 이엘리의 정체를 알아챈 뒤, 한동안 소녀를 냉담하게 대한다. 누구도 악인은 아니다. 오스칼이 이엘리에게 적대감을 품는 건 당연하다. 원치 않게 뱀파이어가 된 이엘리가, 살기 위해 살생을 저지르는 것도 이해간다.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처럼 동물 피로 연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하이틴 뱀파이어물의 판타지인 모양이다.

누군가는 타인에 대한 이해가 살인을 용납하는 범주까지 포함되느냐고 물을 지 모른다. 이엘리의 살인 행위에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다. 그건 관객이 아닌 배심원의 몫이다. 단지 이엘리와 오스칼의 처지에서, 그들의 아픔과 번민에 공감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뱀파이어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회의를 품는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루이 역시 “내가 악인지 선인지 궁금하다”고 말한다. 이엘리는 “실제로 사람을 죽이진 않지만, 다들 마음 속으론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난 단지 살기 위해서 죽이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오스칼에게 호소한다. “한 번만이라도 내가 되어봐줘.”

루이나 이엘리의 딜레마는 ‘다름’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돌아보게 한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 만으로 사회에선 공공연하게 배제와 차별이 일어난다. 사회적 낙인과 고립은 누군가에겐 생의 의미마저 잃게 만들 수 있다. 이를 살인보다 덜 나쁘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오스칼과 이엘리가 함께 길을 떠나는 결말은, 안타깝고 먹먹한 감정을 남긴다.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관용 없는 세상에서 오스칼과 이엘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날 초대해줘. 그래야 들어갈 수 있어.” 오스칼의 집 문턱에 선 이엘리의 중얼거림이 귓가를 맴돈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