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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영결식]直線(직선)의 정치인 巨山, 아우르며 떠나다
뉴스종합| 2015-11-26 09:15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 굽힘 없던 직선(直線)의 정치인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26일 영원한 작별을 고(告)한다. 헤쳐 나온 삶, 88년은 치열했다. 숨통을 조여오는 군부의 무력에 굴하지 않고 “나는 오늘 죽어도 영원히 살 것”이라던 말대로 몸은 떠나지만, 필부(匹夫)의 뇌리에도 기억될 영생(永生)을 얻었다.

입관(入棺) 때 보인 얼굴은 평온했다. 14대 대통령 임기(1993~1998년)말 즈음부터 퇴임 이후까지 그에게 쏟아진 비판도 미소로 포용하려는 듯했다.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장이 마련되고 있다. 박해묵 기자 mook@heraldcorp.com


‘IMF 대통령’. 냉혹한 꼬리표는 그를 괴롭혔다. 병상을 오가던 마지막 3년여간, 그에게 곁을 내준 이는 많지 않았다. 군부 독재자를 향한 증오만큼 경제무능을 심판했다. 그는 외로웠으리라.

YS 재평가를 곱씹는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더니 이제 그를 칭송한다. 위선과 반성이 뒤섞인 ‘광시곡(狂詩曲)’이다. 민주와 자유를 갈망하던 엄혹한 시절, 시대는 영웅에 목말랐다. 누군가는 앞장 서야 했고, 그가 첨단에 기꺼이 섰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2월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할 때 모습. 이젠 국민에게 ‘잘 있으시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사진=헤럴드 DB]


1987년 대선 국면. 군정 종식이 코 앞인 것만 같아 전국은 들끓었다. YS 지지자들은 ‘그대가 우리와 함께 있으매, 우리가 그대와 함께 있으매’라고 시작하는 캠페인송을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 결과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승리. 김대중(DJ) 전 대통령과의 야당 후보 단일화 실패의 후폭풍이었다. 어느 진영이든 ‘분열은 필패’라는 교훈이 남았다.

DJ를 배제한 ‘3당 합당’으로 그는 야권에선 변절자라는 얘길 들어야 했다. 민주투사가 민주화를 지연시킨 원죄를 지은 아이러니였지만 권력의지 자체를 매도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호랑이를 잡으러 들어간 호랑이 굴’에서 그는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군부의 잔재를 싹 걷어내려 했고, 사인(私人)간 돈거래 마저 투명하게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의 초석을 다졌다면, YS는 민주주의의 기틀을 놓고 경제민주화의 싹을 틔우려 했다. YS는 국민의 체질,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지난(至難)한 작업에 손을 댄 것이다. 그럼에도 시류는 YS와 박 전 대통령을 ‘등가(等價)’로도 놓지 않았다.

확실히 YS는 죽음으로써 되살아났다. 빈소를 찾은 3만6000여명의 행렬이 증언한다. 대국민 사과를 주저하지 않는 솔직함, 넓고 깊게 듣는 경청의 자세, 국정 추진력….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 세태에 그가 생전에 보인 ‘열린 리더십’이 더욱 선명해져서다.

좌고우면 없이 내달렸던 YS의 유언은 ‘통합과 화합’. 직선의 삶을 산 그는 이 두 단어로 생을 마무리했다. 모진 세상은 아우르며 넘어야 한다는 당부다. 겨울(음력 12월 4일)에 태어난 섬 소년, 거산(巨山) YS는 이제 영면한다. 모처럼 부는 초겨울 칼바람이 수고로운 삶을 산 그를 매만지고 있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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