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포-기후총회 파리, 아물지 않은 상처
파리에는 아직도 테러의 슬픔과 극도의 경계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파리지앵’들은 가족과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보낼 크리스마스를 꿈꾸고 있었다.
파리 테러의 핵심 용의자인 살라 압데슬람이 체포되지 않은 가운데 29일(현지시간) 파리에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시작됐다. 이날 오후 5시에 회의 참석자들은 파리 테러 희생자 130명을 추모하는 1분간 묵념의 시간을 갖고 회의를 시작했다.
이번 총회는 지난 1948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회의 이후 프랑스가 주최하는 50여년 만의 최대 규모 행사다.
140여개국의 정상ㆍ정상급 귀빈들이 참석하는 대회를 앞두고 프랑스 정부는 총회 경호를 위해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경계 작전을 펼치고 있다.
29일 밤 파리 테러 이후 추모의 광장으로 변모된 레퍼플릭 광장(Place de la Republic)을 찾았다.
‘일말의 두려움도 갖지 마라(Meme pas peur)‘라는 거대한 천에 새긴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광장 주변은 추모의 꽃다발과 양초, 글귀들이 뒤덮고 있었다.
밤 8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총회가 열리는 파리 근교 르 부르제(Le Bourget)에서 광장까지 가는 길에는 거리를 거니는 파리지앵들과 관광객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 파리지앵은 “테러 이후 달라진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광장에 도착하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촛불을 켜며 테러로 숨진 자들을 위로하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27일 앵발리드(Invalides) 광장에서 테러 희생자 130명에 대한 추모식 이후 며칠이 지나지 않은 까닭인 지 광장에는 깊은 슬픔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광장에서 만난 직장인 뤽(Luc)은 “아직 파리 사람들은 테러의 공포와 슬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경찰이 몸을 수색하고 가방을 검사하고 그런 게 이제는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파리 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총회에도 경찰이 최고 수준의 경호와 경계를 펼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 경찰은 개막식이 열리는 ‘르 부르제(Le Bourget)’ 전시장 주변에 2800여명, 파리 주변 지역과 국경 인근에 8000여명 등 모두 1만1000여명의 경찰 병력을 이번 행사에 동원했다. 샤를드골 국제공항에서 파리 중심부로 들어오는 구간은 한 방향이 봉쇄됐고 파리에서 르부르제 구간의 교통은 모두 폐쇄됐다. 파리북부 순환도로는 양방향 모두가 통제됐다. 한국 취재단이 묵고 있는 행사장 주변 호텔에도 경찰이 배치됐다. 호텔 출입시 매번 검문 검색을 받아야 한다. 파리 경찰은 또 시민들에게 29일과 개막식이 열리는 30일 이틀 동안 자가용 사용을 금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기간 동안 집회 시위도 금지된다.
매일 광장에 촛불을 키러 나온다는 저스틴(Justine)이라는 학생은 ”테러 직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다시 밖으로 나가고 있지만 그래도 상점이나 우체국, 카페 그리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여전히 무서운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된 바탕클랑(Batanclan) 콘서트홀은 경찰의 폴리스 라인으로 사고 이후 보름여 동안 진입이 통제된 상태다. 대신 콘서트홀 진입로 주변에 쌓인 추모의 꽃다발만이 당시 참상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부분 파리지앵들은 그러나 한 달여 뒤로 다가온 크리스마스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었다.
뤽은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우울하게 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의 일상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현지 기자인 베르나르(Bernard)는 “모든 집회와 시위 자체를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며 “그러나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느 때보다도 친구와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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