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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이슬기] 공장으로 전락한 국회
헤럴드경제| 2015-12-10 11:47
순간 가동률 870%. 지난 9일 열린 19대 마지막 정기국회 본회의의 법안처리 효율을 산업계에서 사용하는 공장 가동률로 환산한 숫자다.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은 그야말로 공장의 생산라인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오후 4시 20분께부터 시작된 본회의에서 약 3시간 동안 ‘무사통과’된 법안의 숫자만 총 114건.

지난 9월 1일 정기국회 자동소집 시점부터 99일이 지난 8일까지 처리된 법안이 총 130건(일 평균 1.3건)인 것을 고려하면, 약 87일이 걸려야 했을 일을 단 3시간 만에 끝마친 것이다.

이처럼 19대 마지막 정기국회 본회의의 효율성(?)은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놀라웠지만, 정작 그 속은 텅 비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상정된 법안들이 아무리 ‘무쟁점’ 사안이라 하더라도, 1건의 법안을 처리하는데 단 1분여의 시간만이 걸렸다는 사실은 의원들이 마지막 ‘실적 쌓기’에만 주력했다는 의구심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 본회의 당시 여야 의원들은 자신이 소속된 상임위에서 다루지 않아 내용 파악이 어려운 법안에 대해서도 별다른 고민 없이 찬성버튼을 연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기업활력제고특별법,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 세간에서 주목했던 쟁점법안들이 소관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것도 19대 마지막 정기국회를 바라보는 입맛을 씁쓸하게 하는 대목이다.

여야 지도부가 각자의 이해관계와 내부사정에 휘말려 이견을 조율하는데 소홀하면서, 이들 법안은 요소별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아울러 19대 국회는 전체 효율성 차원에서도 지난 4년간 단 2363건의 의안(법안, 안건 합산)만을 처리, 지난 18대 국회(4년간 총 5410건의 의안 처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표를 내밀었다.

국가 운영과 국민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입법 과정을 몇 개의 숫자만으로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의정치의 전당인 국회를 공장으로 전락시킨 것은 의원들 자신이다. 건강한 토론과 타협 없이 정쟁에만 치우치다 연말 ‘막판 스퍼트(Spurt)’로 실적을 쌓는 행태를 버리지 못한다면 ‘공장 국회’의 오명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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