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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상형문자 시대①] 백마디 말보다 ‘이모지’ 하나면 끝
뉴스종합| 2016-01-01 08:50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1. 남자 : “집에 잘 왔어?^^”

여자 : “응 잘 들어왔어”

남자 : “자기 화났어? ㅠㅠㅠㅠ”

이 대화에서 남자친구는 왜 ‘뜬금없이’ 여자친구가 화났을 것이라고 추측했을까. 평소와 달리 아무런 이모티콘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 들어왔다”는 말에 여자친구의 이모티콘이 붙은 대화와 비교해보자.

이모티콘 없는 대화(좌)와 이모티콘이 있는 대화(우).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는 이모티콘을 쓰지 않는 것 자체도 화나거나 무뚝뚝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감정 없는 말은 싫다”

모바일시대,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지 않고 스마트폰 메신저 등으로 소통하는 시간이 크게 늘면서 이모티콘의 사용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신(新)상형문자 시대의 도래다.

카카오톡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국내 카카오톡 이용자 3900만명 가운데 하루 1000만명 이상이 1인당 평균 20개의 이모티콘을 사용한다. 시장 규모가 1000억원대에 이른 이모티콘 시장은 여전히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영국의 옥스퍼드사전은 최근 2015년 ‘올해의 단어’로 알파벳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face with tears of joy) 이모지(emoji)를 선택했다. 

옥스퍼드사전이 선정한 2015년 ‘올해의 단어’인 ‘기쁨의 눈물’ 이모지(emoji)


옥스퍼드사전 측은 “이모지는 더 이상 10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이모지는 일본어 ‘에모지(繪文字ㆍ그림문자)’에서 따온 것으로, 부호의 조합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이모티콘’이 한 단계 진화한 그림문자다. 한국에서는 ‘이모티콘’이 주로 ‘이모지’등을 포함하는 상위개념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신(新)상형문자 시대, 상황에 맞는 이모티콘 사용은 필수=이제는 이모티콘화(化)된 ‘ㅋㅋ’나 ‘ㅎㅎ’ 등 웃음을 뜻하는 초성 이모티콘이라도 사용해야 ‘난 즐거운 상태다’라는 것을 알릴 수 있다.

직장인 강석훈(30ㆍ가명)씨는 “이모티콘이 없으면 왠지 대화가 딱딱해 보일까봐 쓴다”며 “특히 ‘ㅋㅋ’같은 초성이나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과 대화할 땐 나도 적절히 맞춰 써줘야 호응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물론 초성 사용이나 이모티콘 사용이 과도하면 받아들이는 상대방에 따라 ‘덜 자란 철부지’로 인식될 우려도 있다. 이에 강씨 역시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나 어른들과 대화할 땐 이모티콘은 물론 초성도 잘 쓰지 않는다. ‘상대를 봐 가며’ 쓰는 게 중요하다.

대학생 윤모(23ㆍ여)씨는 “답장은 해야겠는데 딱히 할말은 없을때 이모티콘을 사용하면 편리하다”며 “남자친구의 화를 풀 때도 말보다는 귀엽고 애교스런 이모티콘을 사용하면 더 쉽게 풀린다”고 말했다.

미국 뉴멕시코대학의 한 연구진은 두 그룹의 참가자를 메신저로만 소통하게 하면서 한쪽은 이모티콘을 허했고, 다른 한쪽은 금지하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이모티콘 사용 집단이 더 만족감을 느꼈다’였다.

▶센스 있는 ‘짤방’ 하나, 열 이모티콘 안 부럽다=이모티콘 뿐 아니라 각종 캡처 사진이나 그림을 뜻하는 ‘짤방’(짤림방지)의 사용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짤림방지’란 말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서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는 게시물을 올릴 때 운영자에 의해 삭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종 사진 등을 첨부하던 것에서 유래한 단어다.

이미 줄임말인 ‘짤방’은 더 줄여서 ‘짤’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짧은 동영상처럼 화면이 변화하는 gif파일은 ‘움짤’(움직이는 짤방)로 통한다.

최근 “~전해라”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 트로트 가수 이애란의 ‘백세인생’ 캡처 사진 역시 한 인터넷 유저의 ‘짤방’으로 시작했다.

이 ‘짤방’이 인기를 끌자 카카오톡은 아예 ‘이모티콘’으로 만들기도 했다.

친구들과 메신저 대화 중에 ‘짤방’을 자주 사용한다는 손모(27)씨는 “적절한 상황에 쓰이는 짤방 한 컷은 백마디 말은 물론 기존 이모티콘을 압도하는 재치있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특히 ‘짤방’은 사용자들 스스로 화면 캡처나 편집 등을 통해 무궁무진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이들의 새로운 표현 및 놀이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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