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피플앤스토리]“도자기·술·음식…우리 것 세계화는 내 소명”
뉴스종합| 2016-01-15 11:01
“한식 세계화는 먼 곳에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식문화를 고급화하고, 우리 식당을 세계인이 다 즐길 수 있는 전시장으로 만들어놓으면 한식 세계화는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한식 세계화’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한식 세계화를 위해 묵묵히 힘써온 이가 있다. 조태권(68) 광주요 회장이다. 조 회장은 우리 도자기를 빚는 ‘광주요’, 술을 빚는 ‘화요’, 음식을 빚는 ‘가온’과 ‘비채나’를 이끌며 한국의 식문화를 고급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바람이 매서운 1월의 어느 날, 서울 한남동 비채나에서 그의 뜨거운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태권(68) 광주요 회장은 우리 도자기를 빚는 ‘광주요’, 술을 빚는 ‘화요’, 음식을 빚는 ‘가온’과 ‘비채나’를 이끌며 한국의 식문화를 고급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도자기, 전통을 잇다=지금은 누구를 만나든 ‘문화’를 외치지만, 젊은 날의 그는 문화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미국에서 공업경영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대우에서 8년간 근무하고, 나와서는 무역업을 했다. 경력만 봐도 문화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그런 그가 전통과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모님에게서 도자기를 물려 받으면서부터다. 조 회장의 아버지인 광호 조소수 선생은 해강 유근형 선생, 도암 지순택 선생 등과 더불어 경기도 이천에 도자기 마을을 형성한 주역이다. 일본에 머물던 부모님은 일본에서 대접 받는 우리 도자기가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푸대접을 받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1963년 이천에 ‘광주요’를 세웠다. 그러다 1988년 조 선생이 작고하면서 조 회장이 광주요를 맡게 됐다. 6형제 중 막내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올려놨으니 이제 네가 이것을 가지고 우리의 문화로 만들어야 된다. 네가 돈을 벌었으니 너밖에 없다”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조 회장은 벌어놓은 돈과 힘을 모두 쏟아부어 작은 공방 수준이던 광주요를 기업으로 키워냈다. 장농 속으로 사라져버린 전통 도자기를 다시 생활 속으로 끄집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현재의 어려움보단 미래의 비전을 보고 한걸음씩 나아간 결과, 지금은 청와대와 호텔에서 VIP 식기로 쓰이고 해외 유명 레스토랑에서 찾는 한국의 도자기가 됐다.

조 회장은 “도자기를 알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술, 세계를 겨냥하다=조 회장은 한국 식문화의 고급화를 위해서는 한식과 어울리는 고급 술이 필요하다고 판단, 지난 2003년 ‘화요’를 설립했다. 희석식 소주가 주류 시장을 장악하면서 한국 전통주가 잊혀져 가던 당시, 프리미엄 증류주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국내 시장뿐 아니라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술을 만들었다. ‘모든 문화 상품은 세계와 상대해야 한다. 술도 결국은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요의 5가지 라인업도 세계 유명 술들을 겨냥해 구성했다. ‘화요 17도’는 일본 사케, ‘화요 25도’는 일본 소주, ‘화요 41도’는 보드카, ‘화요 53도’는 중국 마오타이, ‘화요 엑스트라 프리미엄’은 코냑과 위스키를 각각 기준으로 해서 만들었다. 단 쌀을 사용해 맛과 향을 더했다.

화요를 설립할 때 주변에서는 “도자기 하는 사람이 저급하게 왜 술 장사를 하냐”는 우려 섞인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뜻이 있었다.

조 회장은 “우리 문화에서 보드카나 위스키 같은 외국 술은 고급주가 되고, 소주 같은 전통 술은 저급주가 돼 버린 게 안타까웠다. 쌀로 만든 우리의 술을 세계의 술과 경쟁시키기 위해 술은 물론 병도 고급화시켰다. 화요 엑스트라 프리미엄은 병값만 7000원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화요는 군대와 면세점에 입점돼 군 장성과 중국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고급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9개인 수출국도 올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 사람들이 ‘위스키 마시러 가자’고 하는 대신 ‘화요 마시러 가자’고 하는 것, 코냑처럼 ‘화요’도 고급주의 보통명사가 되는 것이 앞으로 이루고픈 그의 꿈이다.

음식, 문화를 담다=한식당 ‘가온’과 ‘비채나’는 또 한번의 도전이었다. 음식은 도자기와 술과는 또 다른 분야였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도자기를 갖고 세계에 나가보니 도자기가 유명한 나라들은 전부 음식이 유명하고, 음식이 유명한 곳은 술이 유명했다. 식당이란 곳은 그 나라의 다양한 문화 요소들을 담은 하나의 전시장이었고, 사람들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면서 그로 인해 내수 시장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조 회장은 말했다.

그는 식당이 단순히 밥을 먹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즐기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모든 문화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매개체기 때문에, 우리 식문화를 창조하고 전파하기 위해선 식당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술과 마찬가지로 음식도 ‘고급화’에 중심을 뒀다. 우리 음식에는 저렴하고 푸짐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궁중음식과 반가의 음식처럼 고급스러운 것도 있었다는 데 착안했다.

그는 “일본은 서민들이 먹는 스시를 고급화시켜서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들었다. 현재 일식 인구만 20억명”이라며 “그런데 우리는 우리 음식인 김치도 일본에 빼앗겼다. 김치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는 일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식당에서 공짜로 먹는 반찬을 외국인들이 돈 내고 사 먹지는 않는다. 우리 음식을 세계화시키려면 반찬도 전부 돈 주고 먹는 요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가치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조 회장은 가온과 비채나에 최고의 셰프를 영입해 새로운 한식을 선보였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정갈한 음식으로 입소문이 나 예약이 줄을 잇는 명소가 됐다.

욕심을 낼 법도 하지만 문어발식 확장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세계 주요 도시에 하나씩만 들어가 한국 식문화를 상징하는 곳으로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문화, 평생의 길=조 회장에게 ‘문화’는 운명이자 숙명이다. 30년 가까이 외길을 걸으면서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은 문화밖에 없다’는 생각이 그를 지탱했다.

“문화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정신적인 부분이 많이 사라지고 물질 만능이 돼 버렸다. 이젠 정신을 세워야 된다. 나는 그것을 위한 길을 가고 있다”고 조 회장은 말했다.

한국 방문의 해 추진위원회 이사,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자문위원, 문화관광부 한류문화진흥자문위원회 자문위원,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 무형유산 자문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지내면서는 쓴 소리도 많이 했다. 한식을 세계화하려면 우리나라도 ‘미쉐린 가이드(Michelin Guide)’를 도입하고 국내에서부터 자연스럽게 경쟁과 붐이 일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온에서 일을 배운 셰프들이 나가서 레스토랑을 여는 것도 섭섭할 법 하지만 그는 오히려 좋다고 말한다. “가온과 비채나에서 많은 한식 셰프가 배출되고, 그들이 나가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한식의 외연이 확장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문화를 만드는 게 빌딩을 세우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기반을 만들고 2층이나 3층까지 올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들은 적어도 그 위에서 시작할 수 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고, 이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후대에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고 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이디어가 많다. 현재 우리나라 외식 사업은 70조원 규모인데 앞으로 200조원, 300조원으로 커져 한국의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직 먼 훗날의 얘기지만 은퇴 후에는 문화 사업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교육재단과 기관을 만들어 식문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인재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도자기와 술, 음식, 그리고 문화를 얘기하는 내내 조 회장의 눈은 반짝였다. 여느 청년 못지 않은 열정과 확신이 그의 말에 힘을 실었다.

헤어지면서 그는 악수 대신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만날 때도 하이파이브로 인사한다고 한다.

당당하고 기백이 넘치는 그의 모습에서 “음식도 술도 길들여지는 것이다. 우리가 길만 잘 들이고 좋은 술과 음식을 계속 개발하면 세계인 몇십억명도 우리가 길들일 수 있다”는 포부가 언젠가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김현경 기자/pink@heraldcorp.com

조태권 회장이 걸어온 길

▷미국 미주리 주립대학교 공업경영학 학사 ▷1973~1974년 도쿄 마루이치상사 근무▷1974~1982년 대우 근무▷1988년~현재 광주요 대표이사▷2003년~현재 화요 대표이사▷2008.09~2009.09 ‘2010-2012 한국 방문의 해’ 추진위원회 이사▷2009.03~2010.03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자문위원▷2012.04 문화관광부 한류문화진흥자문위원회 자문위원▷2009.03~현재 성북문화원 원장▷2012.05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 무형유산 자문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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