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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각지대 그늘] 실효성 없는 정부 대책…사회안전망 허와 실
뉴스종합| 2016-01-21 10:23
[헤럴드경제=김대우 기자] “아동학대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 조기발견ㆍ신속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겠습니다” 울산 계모 아동학대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2014년 2월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의 발언이 우리 스스로를 부끄럽게 한다. 초등학생 아들을 2시간이나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한 뒤 사체마져 유기한 희대의 엽기적인 사고가 또 다시 대한민국의 양심을 얼어붙게 하고 있다.

아동학대 신고 접수 시 경찰관 동행과 아동학대 신고의무 직군 확대 등의 종합대책이 수년째 겉돌고 있다는 증거다. 작년말 4살 아동의 평균 몸무게에 불과한 11살 소녀가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맨발로 필사의 탈출을 해 나라 전체를 경악케 한 사건이 발생한지얼마 되지 않아 틀통난 일이다. 


이처럼 어른의 무관심 속에 우리 아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위협받고 있다. 구멍뚫린 사회안전망은 학대아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취약계층이나 빈곤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이 들끓는다. 

▶민낮 드러낸 아동보호체계=
경기 부천 장기결석 초등생 학대사건은 작년말 인천의 11살 소녀가 수 년간 집에 학대당하다 탈출한 뒤 여론이 들끓자 부랴부랴 초등학교 장기결석자 실태를 파악하던 중 드러났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초등학생이 정당한 사유 없이 7일 이상 결석하면 학교가 해당 학생의 부모에게 출석 독려서를 보내고 이를 거주지 읍면동장에게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나 지역 기관이나 형식적 일 처리에 그쳤다. 처벌규정이 없다보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로 치부됐다.

장기결석 학생 부모에 대한 처벌 규정도 외국보다 너무 가벼워 개선이 필요하다. 자녀를 학교에 안 보내는 부모에게 교육청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 중 하나가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지만 현재까지 부과 사례는 단 1건도 없다.

대다수 국가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부모를 형사입건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갖추고 있다. 예컨대 미국은 학부모가 상담에 불응하면 경찰에 고발하는 학부모 소환제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부는 의무교육 미취학자와 장기결석 아동 관리매뉴얼을 개발하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 장기결석 학생에 대한 안전 확인이 책임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실종 신고 의무직군에 유치원과 초·중등학교 교직원을 포함, 아동학대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의 아동학대 근절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사회복지지출 비율 OECD 꼴찌= OECD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10.4%로 조사 대상 28개국 중 꼴찌다. OECD 평균(21.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복지지출 증가 속도만 놓고 본다면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13.1%(OECD 회원국 평균 2~8%)로 가장 빠르다. 보건·복지·노동 분야 정부 예산은 2009년 75조원에서 올해 123조원으로 70% 가까이 증가했다. 급증의 원인은 양극화 심화와 급격한 저출산·고령화 사회 진입이 주된 요인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사회안전망도 휘청거리고 있다. OECD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9.6%로 OECD 34개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2014년 기준으로 0.302를 기록했는데, 이는 OECD 국가 중 17번째로 중간 정도 수준이다. 반면, 한국의 조세 부담률은 18%로 스웨덴(50%)과 같은 복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상황이다.

정부의 겨울철 복지사각지대 발굴 지원 대상자 [자료=보건복지부]

▶허술한 사회안전망에 구멍뚫린 사회관계망= 지난해 3월 부산에서 29살 여성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20~40대의 죽음을 ‘절망사’라고 하는데 최근 급증하고 있다. 2000년 20대 절망사는 10만 명당 7.9명에서 2014년 19.7명으로 늘어났다. 40대 절망사는 10만 명당 15.4명에서 42.3명으로 증가했다. 그간 정부가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기초생활을 위한 복지를 확대한다고 떠들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방증이다.

우리 국민 10명 중 1명(9.8%)은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고, 자신의 소득계층이 하층이라고 여기는 집단에서는 응답비율이 28.7%까지 올라간다. 일본(21.1%), 덴마크(16.1%), 브라질(8.2%)보다 우리 저소득층이 사회적 지원에서 훨씬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도움을 청할 일이 더 많은 계층일수록 정작 기댈 곳이 없는 ‘양극화 사회’의 패러독스다.

허술구멍 뚫린 사회적 관계망의 결과는 자살률로 나타난다. 한국은 하루 꼴로 38명(2014년 기준)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11년째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기록 중이다. 전문가들은 “낮은 사회적 유대감과 부족한 사회 지원 관계망 형성이 자살을 부를 정도로 정신을 메마르게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공공 빅데이터 활용한 위기가구지원책 효과볼까= 가정형편이 어려워 전기료나 건강보험료 등을 체납하는 가구를 선제적으로 파악해 복지혜택을 지원하는 정보시스템이 운영된다. 보건복지부는 전기료, 수도료, 가스요금, 건강보험료 체납 등 18가지 정보를 관련 기관들로부터 취합해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내는 빅데이터 시스템을 14일부터 운영한다. 생활고에 시달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는 취약계층을 미리 파악해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한전은 전력 제한을 포함한 단전 정보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료를 체납하거나 의료비를 과도하게 부담하는 가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운영된다. 자살예방센터의 자살 고위험자, 응급의료센터의 자살·자해 시도자도 관리 대상에 포함한다. 복지부는 향후 화재·자연재해 피해, 미숙아 지원사업, 범죄 피해 정보 등 6개 정보를 추가해 총 24개 정보를 통합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이런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 큰 위험이 예상되는 가구를 선별하고 지방자치단체들과 함께 복지 급여·서비스를 지원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송파 세 모녀 자살 이후 취약계층을 선제적으로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관련 법령을 정비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dew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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