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공공연한 이야기]난자리에도 볕들 날 오겠죠
라이프| 2016-01-25 11:03
정명훈이 서울시립교향악단을 떠났다. 갑자기 난 자리를 메우는 건 서울시향 식구들의 몫이었다. 당장 1월 정기공연의 대체지휘자를 찾아야 했다. 16일, 17일 공연의 레퍼토리는 말러교향곡 6번 ‘비극적’이었다. 워낙 난곡이라 ‘곡을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대체지휘자 후보들의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시향은 2010년부터 쌓아온 말러 시리즈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정 전 감독이 2013년 ‘지휘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발굴한 37살 젊은 부지휘자 최수열에게 지휘봉이 넘겨졌다. 


최수열은 단원들이 지난 10년간 정명훈과 갈고 닦은 내공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힘을 모았다. 80여분 대곡을 무리 없이 완주하며 4000명 관객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커튼콜에서 그는 114명 단원을 일일이 가리키며 박수의 방향을 돌렸다. 다 함께 선방해냈다는 의미였다.

‘만약 정명훈이었더라면’이란 가정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정명훈이었다면 객석을 더 가득 채우지 않았을까, 정명훈이었다면 더 완벽한 연주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다. 남겨진 시향과 그의 연주를 사랑했던 관객들은 앞으로의 길을 찾아야 한다.

시급한 건 차기 예술감독을 발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서울시향 측은 “‘지휘자 발굴 위원회’를 구성해 정 전 감독 후임을 논의하겠다”고 밝혔으나, 속도가 붙기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할 형국이다.

7월부터 열리는 6번 정기공연의 지휘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차기 감독이 그때부터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시향 측 설명이다. 감독을 선임하는 건 서울시향이 쌓아온 명성을 이어갈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기에 다각도로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 다만 나쁜 지휘자가 있을 뿐이다”라고 19세기 독일 명지휘자 한스 폰 뷜러는 말했다. 좋은 지휘자를 발굴하는 것이 이번 사태를 위기에서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지난해 전 단원 투표로 베를린 필하모닉 차기 수석지휘자에 선정된 키릴 페트렌코가 떠올랐다. 1차 회의에선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지 않았던 그가 2차 때 주목받으며 ‘첫 러시아 출신이자 최초의 유대계 인물’이란 발자국을 찍었다.

변수는 예기치 않게 생기고 때론 그 결과가 새로운 문을 열기도 한다. 서울시향에도 변화의 바람이 들이닥쳤다. 긴 안목으로 보석을 찾길 바란다. 그것이 발굴의 묘미란 걸 말러 교향곡을 들으며 맛보지 않았을까.

뉴스컬처=송현지 기자/song@newsculture.tv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