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짜리 인생의 樂’ 지갑 얇은 젊은층에 인기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단돈 500원에 스트레스 풀기 딱이에요. 혼자 와도 전혀 부담 없고요. 인생의 낙(樂)이죠.”
과거 전자오락실에서 볼 수 있던 ‘동전 노래방’이 10~20개 방을 갖춘 ‘코인 노래방’으로 진화해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신촌이나 건대 등 서울 지역 대학가를 중심으로 최근 1년 사이 코인 노래방은 크게 늘었다. 한 평(3.3㎡) 남짓한 작은 방이지만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이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두곡에 500원 간판의 코인 노래방. |
한파가 잦아든 지난달 28일 오후, 기자가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코인(coin) 노래방’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대학생, 자취생, 중고생들이었다. 평일 낮시간인데도 코인 노래방은 붐볐다. 동전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거의 사라진 요즘이지만 이곳에서는 ‘500원’에 두 곡이나 부를 수 있다. 300원을 넣고 한 곡을 부를 수 있는 곳도 있다.
한 코인 노래방에서 같은 과 후배와 노래를 부르고 나온 이보성(22ㆍ건국대 3학년)씨에게 말을 건넸다. 이씨는 1주일에 두 번씩 이곳을 찾는 ‘단골’이다. 그는 “1, 2년 전만 해도 노래방에 가려면 가격 부담 때문에 같이 갈 사람을 모아야 했다. 그런데 코인 노래방이 생기면서 두 명은 물론 혼자 와도 전혀 부담이 없다”며 웃었다.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의 코인 노래방 풍경. 한평(3.3㎡)남짓한 공간에서 500원에 두 곡을 부를 수 있는 코인 노래방이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배두헌 기자/badhoney@heraldcorp.com |
함께 온 후배 김지수(21)씨도 코인 노래방만 이용하고 있다. 1시간에 1만5000원~2만원이 기본인 노래방과 달리 코인 노래방은 시간을 선택할 수 있어 합리적이라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김씨는 마지막 곡으로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고 나왔다.
‘응팔’에서 다시 인기를 끈 ‘보라빛 향기’를 열창하고 나온 대학생 황모(21ㆍ여)씨도 코인 노래방 ‘마니아’다. 황씨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노래 중간 중간 쉴 수 있어서’다. 그는 “쉬고 싶어도 일반 노래방에서는 시간이 돈이라 아깝지만 코인 노래방은 한 곡 부르고 마음대로 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황씨는 학기 중에도 공강 시간 등 막간을 이용해 20~30분씩 스트레스를 풀러 온다.
코인 노래방에는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도 보였다. 중학교 2학년 A(15)군은 1주일 두어번 이곳에 와서 보통 네 곡 정도를 부르고 간다. A군이 4곡을 부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드는 비용은 1000원이다.
코인 노래방 업주 B씨는 “최근에 한 학생 손님이 와서는 ‘여기서 스트레스 잘 풀어서 대학에 합격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해오는 일도 있었다”며 웃었다.
혼자 노래방을 찾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저렴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달리 카운터나 관리자가 없어 눈치 볼 일이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계산이 필요 없이 동전을 넣고 노래를 부르면 되고, 동전 교환은 자판기가 해결한다. 누군가와 부딪힐 일이 없다보니 혼자 왔다고 해서 민망할 것도 없다.
좁다. 코인 노래방 내부. |
자취생 김모(25)씨 역시 혼자 노래방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김씨는 자신이 ‘혼밥’(혼자 밥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는 물론 ‘혼방’(혼자 노래방가기)까지 다 섭렵했다며 웃었다. 밥과 술은 물론 이제 노래까지 함께 어울리는 유흥이라기보다는 혼자 부르고 혼자 만족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코인 노래방을 운영한지 만 1년이 됐다는 업주 정모(52ㆍ여)씨는 “혼자 와도 부담 없고 눈치 안 보이니 1인 고객들이 상당하다”며 “공부하는 학생들이 혼자 와서 500원, 1000원 내고 소리지르고 스트레스 풀고 가기에 제격 아니냐”고 웃었다. 최근에는 30~40대는 물론 50~60대도 혼자 노래 연습을 하러 온다고 정씨는 설명했다.
반면 일반 노래방 업주들은 울상이다. 5년째 이곳에서 일반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주는 “코인 노래방에 학생 손님을 많이 빼앗긴 것은 사실이다. 코인 노래방이 최근에 우후죽순 생기면서 남는 중고 기계가 없을 정도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불경기에 요즘 혼자하는 세태에 맞춰 틈새 시장을 뚫은 건 맞다”면서도 “노래방 기계ㆍ인테리어ㆍ부동산 업자 등이 한 팀을 짜 ‘코인 노래방이 뜬다’는 말로 현혹하며 과도하게 장사를 하는 측면도 분명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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