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인상이 좋고 매너가 훌륭하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된다. 명함(겉)과 실질이 상이한 경우가 허다하다. 큰 거래를 하기 전에, 상대방의 법적 실체부터 확인해야 한다. 개인, 민법상 조합, 비법인 사단, 상법상 회사들 각각의 대내적 대외적 법률관계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대내적 법률관계 하나를 살펴보자. 경기도 파주에 교하 탁구장이 있다. 열성 회원 25명이 존속기간 없는 ‘필승탁구조합’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정기적으로 모여 탁구 경기도 하고, 국가대표 출신 코치를 모셔다 레슨도 받기로 한다. 매달 10만원씩 회비도 걷는다. 매년 1,000만원 정도가 남는다. 그 돈으로 헤이리 지역의 땅을 조금씩 매입하기 시작한다. 5년 뒤 당신을 포함한 회원 10명이 새로 가입한다. 그로부터 다시 몇 년이 흐른다. 그런데 국가가 대규모 예술인 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헤이리 땅을 수용한다. 100억 가까운 보상금이 나온다. 얼마 뒤, 보상금 분배를 위한 회원총회가 예고된다. 모임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보상금을 배분하자는 안건이 상정된다. 창립회원 25명은 찬성하고 신입회원 10명은 반대하고 있다. 다수결에 의해 안건이 가결된다면 보상금 대부분은 창립회원들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신입회원들은 분기탱천한다.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만일 필승탁구조합이 이름 그대로 ‘조합’이라면 간단한 방법이 있다. 신입회원들은 조합 탈퇴를 선언하고 지분을 청구할 수 있다. 탈퇴한 조합원과 다른 조합원 사이의 계산은 탈퇴 당시의 조합 재산의 상태에 의하여야 하고, 탈퇴한 조합원의 지분은 그 출자의 종류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금전으로 반환할 수 있으며, 탈퇴 당시 완결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완결 후에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민법 제719조)
그런데 만일 ‘조합’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필승탁구조합의 실질이 ‘비법인 사단(권리능력 없는 사단)’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보상금은 ‘총유’ 즉, 모임 전체의 소유로서 각 회원으로부터 독립된 상태가 된다. 마치 주식회사의 자산이 개별 주주와 분리돼 있는 것과 유사하다. 신입회원들은 모임에서 탈퇴하더라도 보상금의 분배를 요구할 수 없다. 보상금의 관리나 처분에 관해서는 정관이나 규약, 또는 사원총회의 결의에 의해서만 정할 수 있다. 상황을 뒤집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조합’과 ‘비법인 사단’의 차이는 무엇일까? 구성원 교체와 관계없이 모임이 존속하고 규약이 정해져 있으며, 의사결정 조직과 대표자가 존재하고 다수결에 의해 의사결정을 한다면 비법인 사단으로 본다(대법원 1999.4.23 판결 99다4504.). 필승탁구조합은 비법인 사단에 해당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신입회원들이 보상금을 분배 받을 길은 거의 없다. 사전에 ‘여유자금이 생기면 회원들에게 균등분배한다’는 조항을 규약에 넣어 놓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동구 변호사
법무법인 참